모성애는 엄마, 여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자든, 성직자든, 애 엄마든, 독신이든,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는 품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성적인 사람’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고달프다. 지치고 힘들 때면 보고 싶은 사람-엄마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출간 석 달 만에 40만 부가 팔렸다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가족들처럼 모두가 엄마를 찾는다.

신경숙의 ‘엄마’는 평생 ‘우리들’을 위해 자신을 다 헐어내고 녹여내 버렸다. 우리들은 엄마의 모든 것을 다 흡수하고 차지해버려서 엄마는 그 존재감 자체가 없어졌다.

엄마의 ‘실종’ 사건이 있고나서야 ‘우리들’은 간신히 그것도 기억 속에서 엄마의 조각들을 하나둘 끄집어낸다. 엄마처럼 모든 것을 타인에게 갖다 바친 또 다른 존재를 영화 ‘워낭소리’에서 만났다. 개봉 6주차에 140만 명을 돌파한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은 아버지와 소다. 40년 동안 부려먹었다는 늙은 소. 달구지를 끌고 다니기도 힘에 부치는 늙은 소는 이제 눈꺼풀 올릴 힘도 없다. 우시장에서 ‘고물’ 소리에 눈물 흘리는 소의 표정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이 소의 친구이자 주인인 할아버지는 종살이에 가난으로 이어진 힘겨운 인생사를 정직한 노동으로 견뎌낸 우리 시대의 가장이다. 논밭에 농약도 안 치고, 기계농사도 외면하면서 쇠잔한 육체로 바닥을 기어가면서 쟁기를 끌고 다녔다. 소와 할아버지는 말이 없다. 서로 믿고 사랑할 뿐이다.

2009년 2월에 우리는 ‘우리 생애 최고의 모성’을 만났다. 2월 16일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이다.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 안구 기증으로 생명의 빛을 나누어 주신 김수환 추기경.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지만 그의 권력은 헌신과 희생, 그리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정신의 깊이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모여든 조문객은 40만을 넘어서서 명동 일대에 감동의 물결을 이뤄냈다. 그 조문객들의 가슴속에는 ‘영혼의 하늘’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으리라.

삶이 고달파질 때 그리워지는 사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나눠주는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 모성애는 엄마, 여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남자든, 성직자든, 애 엄마든, 독신이든, 아낌없이 나눠줄 수 있는 품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성적인 사람’ ‘모성애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가 살기 고달프다고 엄마를 바깥에서만 찾거나, 남에게 엄마가 되어주기만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존재를 찾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남에게 서로 엄마가 되어주면 어떨까. 

엄마가 넘쳐나는 사회, 모성이 봇물처럼 넘치는 사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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