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지고 싶다는 것은 모든 이들의 희망일 것.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삶을 산다면 과연 행복할까. 영화는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의 일생을 보여주며 이런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나는 다르게 태어났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어갔고, 나는 반대로 젊어졌다.”
1918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벤자민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다. 키와 뇌 기능 외에는 노인의 모습을 가졌던 벤자민을 본 생부는 그를 양로원 문 앞에 버리고 만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말에 “우리들과 똑같네”라고 말하며 그를 받아들여준 양로원의 노인들. 그를 특별한 괴물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주는 그들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벤자민의 인생에서 첫 번째 축복이된다.
“인생의 종착역은 똑같아. 어떤 길로 가는지가 다를 뿐이지.”
10대 초반 노인과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만나 첫눈에 반했던 두 남녀는 40대가 되어서야 비슷한 나이로서 온전한 사랑을 이룬다. 하지만 만남은 또 다른 이별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점점 젊어지는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 벤자민은 딸의 미래를 위해, 아이가 자신을 기억하기 전에 어렵게 만난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고 만다.
166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화는 별다른 스펙터클한 사건도 없이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영화에 빠져들어 시간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서 우리네 삶의 단면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일생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갈 수 있고 같은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소한 일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깨닫는다.
이 영화가 가슴 깊이 다가올 수 있는 것은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연출력에 기인한다. ‘세븐’과 ‘파이트 클럽’ ‘에이리언 3’ 등을 통해 할리우드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렸던 감독은 마치 고전영화처럼, 혹은 동화처럼 펼쳐지는 대작에서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영화의 원작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 50쪽에 불과한 짧은 단편은 2시간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크린에 옮겨지면서 시대의 면면을 반영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연대기와 이어지며 꼼꼼하게 엮인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이처럼 무수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정리해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극본을 쓴 에릭 로스의 전작이 ‘포레스트 검프’임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모두가 현실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요즘, 삶의 소중함을 잊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감독 데이비드 핀처/ 주연 브래드 피트·케이트 블란쳇/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