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근원 '씨앗'으로 생명 형상화
그렇기에 종교는 죽음을 부활이나 윤회 등으로 연결 짓고 있다. 종교에서는 자연생명체(씨앗)의 죽음은 다시 소생하지만 또다시 죽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부활로 여기지 않는다. 진정한 부활은 죽음의 그림자도 없고, 영원히 살며 남도 살리는 생명력을 지닌 신적인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부활이라는 희망을 갖고 아름다운 일을 행하고 노력하며 선행을 베푼다. 이러한 희망이 우리 삶의 모든 것에 의미를 주며,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한 희생적인 사랑도 가능하게 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고 썩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듯 인간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고 희망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간다.
희망으로 피어나는 씨앗
화가 송민호는 생명의 근원을 씨앗으로 보고 있다. 희생(씨앗)이라는 죽음을 통해 새롭게 피어나는 꽃잎으로 생명을 형상화하고 있다. 씨앗의 형상은 판화같이 찍어내거나 종이 위에 채색되어 오려붙인 콜라주, 그리고 드로잉 등으로 표현해낸다.
이를 일원화하듯 바탕은 의식적으로 흰색이거나 붉은 색상으로 채운다. 마치 잉태 순서를 기다리듯 씨앗은 대지를 향하고 있다. 이어지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대지는 묵묵히 품을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대지는 모든 것을 감추어버리듯 무채색 속으로 스며든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을 묻어버림(죽음)으로써 새롭게 잉태될 생명을 화려한 색상과 간결한 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송민호의 그림들은 어떤 외적 요인에도 개의치 않고 자기 추억이나 기억의 파편들을 절제된 선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소재의 형태들을 추상보다는 일상에서 보아진 구상의 형태로 나타낸다.
그는 재현이나 답습보다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내재된 감수성으로부터 형상 이미지를 표출해 낸다. 이는 지난날의 기억이나 추억이 설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과정은 연속으로 채색하고 비우고 긁어낸다. 다시 드로잉과 덧칠을 하며 사포로 스크래치(scratch) 한 거친 캔버스 위에 판화기법으로 찍어낸 뒤 콜라주(오려붙이기)와 드로잉으로 마무리한다.
송민호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뚜렷한 자신의 정체성으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오늘도 나는 작업실에서 끝나지 않는 나만의 긴 여행을 떠난다. 사막에서는 지도가 아닌 나침반이 필요한 것처럼 내 마음속에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서 조용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나의 정체성을 향해 걸어간다.” -작가노트 중에서-
송민호의 그림들은 최소한의 암시와 상기(想起)만을 가지고 도식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씨앗이나 꽃잎은 가장 절제된 선으로 나타나며 화사하거나 정열적이라기보다 순수하고 소박하다. 이렇듯 그의 씨앗이나 꽃잎은 화려함을 뒤로한 채 우리에게 조용히 다가온다.
씨앗으로부터 형성된 자유로운 선들은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여백의 공간 속에 하나의 드로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여백의 미학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마치 사람의 말보다 상대방의 표정이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듯 그의 그림은 여백으로 하여금 많은 여운을 남긴다.
화사함과 소박함, 차가움과 따스함, 어두움과 밝음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그림에 대한 그의 감수성을 느끼게 한다.
다시 태어나 거듭난다는 것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다. 송민호의 그림은 부활(윤회)이라는 커다란 삶의 굴레 속에서 회의와 반성 그리고 재탄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