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로 번역된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은 서구 급진주의 페미니즘 사상의 기초가 된 고전 중 하나다. 그녀는 당대 미국 소설 분석을 통해 국회나 정당이라는 ‘협소한’ 의미의 정치가 아니라, 한 인간집단이 다른 인간집단을 지배하는 구조적인 관계로서의 정치, ‘성관계’가 그 핵심을 이루는 남녀권력관계를 포착했다.

헨리 밀러의 작품에 나오는 남성 주인공은 성적 욕망이 극도로 강하고 이를 전투처럼 수행하며, 여성 주인공은 그에게 포획되고 공격되는 먹잇감으로 묘사된다. ‘노만 메일러’의 주인공은 고분고분하지 않던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후 하녀와 항문성교를 하면서 곧 하녀도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쾌감에 도취된 남성이다. 여기서 남성은 신(神)이고, 남근은 무기이자 정당한 욕망이며, 여성은 암캐, 암탉, 고깃덩어리나 음문일 뿐이다.

DH 로렌스의 ‘차털리 부인’에서도 사냥터지기인 남성은 성관계에서만은 귀부인에게 명령하고 그녀는 복종하는 관계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성적 폭력이 죽음, 더 정확히 살해에 대한 상상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녀를 정복하고, 흡수하고, 갈기갈기 찢어서 태워버려야 한다’는 문학적 상상은 그것이 현실에서 수행되면 곧 살해가 된다.

난자와 세포들이 수동적으로 공격을 기다린다고 가정한 남성 심리학자들의 ‘여성 마조히즘’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과 살해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가정하는 남근숭배의식의 발로다. 이 책이 쓰였던 1970년 이래 페미니즘 사상들과 사회적 상황들은 급변해 왔지만, 놀랍게도 최근 한국에서 위와 같은 성폭력과 살해의 상상이 수행되고 있다.  

최근 연쇄살인범 사건에 대해 언론은 ‘사이코패스’라는 개인 심리적 결함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은 그와 같은 남성 가해자들을 성적 욕망의 극치를 살해로 마무리하는 극단적 남근숭배주의 감염자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남근숭배주의가 광범하게 작동하는 사회적 조건을 분석하고 처방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용산참사를 축소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적극 홍보하라는 논지의 청와대 이메일 사건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향과는 달라 보인다. 비록 규명 중이기는 하나 이 사건은 정부가 다른 정치적 이유로 이 사건을 이용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시민들에게 사회적 위협은 보통 개인이 아닌 집단적 수준의 대응이 효과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성적 지배는 성관계와 같은 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공간에서 발생함으로써 집단적 저항 공식은 힘을 잃는다. 밀레트가 지배권력관계를 성관계 분석에서 출발한 것은 이런 점에서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여성들이 연쇄살인범 강의 차에 순순히 탔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핵심을 비켜가는 질문이다. 기억하라, 세상이여. 모든 여성들은 강간과 살해를 원치 않는다. 그녀들은 바로 그 순간, 두 눈 부릅뜨고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저항했을 것이다.

그 저항의 몸짓조차 땅에 묻힌 채 오직 가해자의 진술에 의해서만, 즉 뒤바뀐 의미로서만 되살아나는 반역적 죽음.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 죽음을 가부장적 폭력에 대항하다가 쓰러져간 저항적 참사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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