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6곳 아파트 30년째 ‘미혼 여성’만 고집
"저소득 시설서도 노골적 차별 서러워" 분통
근로공단 ‘기혼’에도 개방…조례 개정 시급

저소득 여성들의 주거복지를 위해 임대아파트를 운영하고 있는 지자체들이 이혼 여성에게는 입주 자격을 주지 않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근교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이수정(28·가명)씨는 최근 친구를 통해 여성임대아파트를 알게 됐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월 임대료가 단돈 9만원. 현재 월세 60만원인 집에 살고 있으니 아파트에 들어가면 매달 51만원이란 거금을 아낄 수 있다. 수정씨는 들뜬 마음으로 성남시 여성임대아파트 ‘다솜마을’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곧바로 입주 신청을 포기해야 했다. 현장에 가서야 이혼한 여성은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수정씨는 “5년 전 이혼한 뒤 사회적 편견과 생계 때문에 힘들었지만 저소득 여성을 위한 임대아파트라고 해서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제출 서류 중 하나가 혼인관계증명서더라. 노골적으로 차별을 당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여성임대아파트는 1970~80년대 지방 거주 여성들이 취업을 위해 도시 공단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부족한 주거 공간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도입한 복지정책 중 하나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월 2만~9만원의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아파트를 이용하고 있다. 소득이 적은 순서로 입주하며, 기간은 2년이다. 한 번 연장이 가능해 최대 4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현재 여성임대아파트를 운영하고 있는 지자체는 서울 광명·중랑, 경기 성남, 대전, 전북 전주, 경북 구미 등이다. 이들 모두 결혼한 적이 없는 ‘미혼 여성 근로자’에게만 입주를 허락하고 있다.

성남시 관계자는 “1984년 제정된 성남시 여성임대아파트 운영 조례에 따르면 입주 대상이 ‘미혼 근로 여성’으로 제한돼 있고, 다른 지자체 조례도 똑같은 것으로 안다”며 “사전적 정의로 미혼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혼 여성들의 아파트 이용률이 줄어들면 효율성 측면에서 이혼 여성에게도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여성임대아파트는 최근 몇 가지 변화를 거쳤다. 성남시는 여성들의 혼인 연령이 높아지는 현실을 반영해 지난 2007년 12월 만 29세 이하 연령제한을 폐지했고, 구미시는 일하는 외국인 여성이 증가하는 지역적 현실을 고려해 2008년 5월 외국인 여성도 입주 대상에 포함했다. 그러나 급증하는 이혼율과 그로 인한 여성들의 경제적 문제에 대해 귀 기울이는 지자체는 한 곳도 없다.

모경순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사무처장은 지난해 5월 구미시가 여성임대아파트 조례를 개정할 당시 외국인 여성은 물론, 이혼·기혼 여성에게도 아파트 문을 열어 달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었다. 그러나 시에서는 “외국인 여성은 조항만 추가하면 되는데 이혼·기혼 여성은 전부 개정이 필요하고 다른 지자체 선례도 없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모 사무처장은 “여성임대아파트가 설립된 70~80년대 당시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일을 그만뒀고 사회적으로도 미혼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대적 정서가 있었다. 하지만 벌써 30년이 지났고 상황도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혼한 여성이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자립해야 하는 기혼 여성에게 경제적 어려움이 더 큰 것이 당연한데도 30년 전 규정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비록 매각이 결정돼 2008년 1월부터 신규 입주 신청을 받지 않고 있지만,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서울 구로, 경기 부천, 인천, 강원 춘천, 대구, 부산 등 6개 지역 여성임대아파트에서는 미혼 여성은 물론, 기혼 독신 여성까지 입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12월 현재 미혼 여성, 이혼 여성, 혼인 중인 여성 총 1378명이 살고 있다.

여성임대아파트 업무를 담당하는 신진수 근로복지공단 임금고용팀 대리는 “1990년 12월 노동부가 만든 ‘근로청소년임대아파트 관리운영지침’에 따르면 미혼은 물론 기혼 여성과 외국인 여성도 입주 대상으로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신 대리는 “다만 단서조항으로 ‘지자체가 건립한 임대아파트의 경우 미혼 여성 근로자에 한함’이라고 돼 있는데, 지자체에서 이미 미혼 여성으로 자격을 제한해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인지, 아니면 노동부가 일괄적으로 지침을 내린 것인지 지금으로선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단에선 이미 88년부터 기혼 여성에게도 문을 열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이혼한 여성도 미혼으로 보는 것이 시대적 흐름에 맞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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