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추인엽

물이 넘쳐 생긴 홍수의 피해가 아니라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겪고 있는 물에 대한 문제다. 물의 고갈은 강원도 태백에서부터 남해 작은 도서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몇 달간 이어지는 가뭄은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생활용수뿐만 아니라 농작물에도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새삼 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일들이다. 이렇듯 물은 만물의 근원이며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는 생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추인엽은 최근 몇 년간 물을 지속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가 그려내고 있는 물의 형상들은 샘, 호수, 폭포, 강, 바다, 파도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형상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사색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개념화된 조형작업들이다.

그가 개념화된 작업들을 풀어내고 있는 방법 또한 특이하다. 화면의 소재들은 화폭의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마치 구멍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듯 둥글게 펼쳐진 형상들은 마치 파노라마의 한 장면같이 느껴진다. 사전의 준비작업 과정으로 주변의 풍경을 순차적으로 360도 회전하며 찍은 사진이나 스케치들을 합성을 통해 재결합한다. 이는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다시점(多視點)으로 재구성된 초현실화된 추상으로 나타난다.

물의 순환 속에 내재된 인간의 순리적 삶 

추인엽은 화폭에 담긴 삶의 굴레인 욕망과 갈등 그리고 소망들을 흐르는 물과 같이 물의 순환과정을 통해 삶의 긴 여정으로 그려낸다. 폭포 시리즈는 그 모양이 다양한 형상을 이루며 수직적 이동을 통해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해주며, 파도 시리즈는 수평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공기와 함께 일어나는 물거품은 물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밀려오는 물의 에너지를 기(氣)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는 물을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물의 형상을 시각화한다. 그렇기에 그는 간혹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다. 하늘에서 바다를 향해 떨어지는 폭포수나 거대한 물기둥을 이루며 허공을 가르는 파도의 모습은 극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다채로운 색채로 표현되고 있는 물의 단면은 우주의 무한 공간처럼 깊이감을 더해준다. 이러한 표현들은 때로는 정적인 고요함으로, 때로는 동적인 거침과 도도함으로 다가온다.

“나의 작업은 물의 형상을 통하여 동양적인 사색의 공간을 보여주고자 한다. 평면과 그 평면의 이미지를 입체로 전환시켜 보여주고 있다. 드로잉과 조각, 드로잉과 모자이크, 회화작업과 조각 등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물이 가지고 있는 형상은 다양하고 매력적이며, 순환하는 대자연은 나의 작업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끊임없이 변화하여 흐르는 물의 형상을 통해 순환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흐르는 물에 마음을 던진다.” - 작업노트 중에서-

추인엽은 물을 소재로 한 회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조각의 조형세계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흙으로 빚어낸 순환하는 ‘흐르는 강’이나 역동적인 에너지를 지닌 거대한 물기둥 ‘일파’는 물기둥을 조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자연석을 상감하듯 일정한 부분을 파낸 자리에 컬러타일로 채워 넣은 모자이크기법을 통해 물을 표현해 내기도 한다.

추인엽은 물에 대한 동양적 사고를 바탕으로 현대미술에 접목하려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물의 순환을 통해 자연의 이치와 순리를 이야기한다. 이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동양사상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표현할 때 흔히 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물은 음의 기운으로 여긴다. 물은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넘어서지 않는다. 다만 낮은 곳으로 비켜간다. 그렇기에 동양에서는 최고의 미덕은 물과 같은 자세로 여긴다. 바로 이것을 순리로 생각하기도 한다. 공을 내세우지 않고 세상의 온갖 더러움도 묵묵히 담아간다. 추인엽은 물에 대한 표현 속에 세계관과 삶에 대한 교훈을 가득 담고자 희망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 9회와 다수의 단체전을 가진 바 있다. 과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전업 작가로 현재는 서울미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