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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예방 거리문화제'에 참여한

인천 여고 '여성문화연구반'(왼쪽부터 강민경,노선희

이현숙,최선미선생,박은미)

“어른들이 성에 관해 감추기 때문에 성 지식도 없고 오

히려 성폭력문제가 커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성에 관해

서 제대로 알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10월 17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성폭

력 예방을 위한 문화제’의 “청소년 자유발언대” 시

간에 한 여학생의 말이다.

지난해에 이어 ‘제2회 거리문화제’를 주최한 한국

여성민우회의 ‘가족과 성상담소’는 “성 이야기, 즐

겁게, 당당하게”를 표어로 내걸고 자신의 느낌과 의사

를 정확히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목표

아래, 청소년들 주체로 꾸미는 노래와 춤, 연극 등의 문

화공연과, 성과 관련한 잘못된 통념을 깨뜨리고 올바른

성지식을 알리기 위한 전시물 작업과 서명운동 등을 펼

쳤다.

‘거리문화제’가 열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야외무대

옆에 전시된 전시물 가운데 유독 사람들의 발걸음을 오

래 머물도록 하는 작품이 있었다. 인천의 한 여자고등학

교 ‘여성문화연구반’ 학생들이 만든 성상품화에 관한

꼴라쥬와 성폭력에 관한 만화작품이었다. 이번 문화제

에 참여한 다섯 명의 연구반 학생들을 만나 그들이 느끼

는 성문화와 성폭력에 관한 생각들을 들어 보았다.

문화제에 참여해 만든 작품 설명

김은영(2): 남자들의 우월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작

품으로 만들었어요. 우리사회에서는 남자들이 우월하다

고 말하고, 남자들이 지배를 하잖아요. 그러나 그 결과는

전쟁만 일삼는 남자들의 세상밖에 남는 게 없는 것 같아

요. 그런 남성지배사회에 대한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해

서 표현하고 싶었어요.

박은미(2): 낙태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 보았는데 내가

딸이라고 해서 만약 낙태를 당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

해 보았어요.

노선희(2), 이현숙(2): 우선 작품 만들면서 재미있었어요.

저희 둘은 일반 잡지, 여성지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성상

품화에 대해 표현해 보았어요. 향수 선전을 할 때 그 제

품 자체만 선전하면 될 텐데 그렇지 않고 여성들의 성적

이미지를 내세워 선전을 해요. 이런 의식들을 바꿔야 한

다고 생각했죠.

강민경(2): 만화는 평소에 많이 그렸지만 여성문제를 주

제로 해서 그리기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무엇보다도 여

자들의 생각을 알리고 싶었고, 성폭력을 하는 남자들에

게 경고를 하고 싶었습니다. 특활에 참여하면서 남자들

이 여자의 ‘No’를 ‘Yes’로 안다는 걸 처음 알았고,

황당했어요. 그런 잘못된 점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만화를 그렸어요. 언젠가 여자들의 설 자리가 있

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미혼모가 되었더라도 사회

적으로 보장을 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와서 정말로 여자로서 긍지를 느끼면서 살 수 있었

으면 좋겠어요.

또래들의 성문화

민경: 아이들 사이에서 1번은 키스, 2번은 포옹, 3번은

성관계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많아요. 실제 주위에

임신해서 낙태한 친구도 봤구요. 그런데 임신을 하면 다

들 여자의 부주의로만 모는 사회예요. 여자만 비난하지

않고 책임을 질 수 있는 남녀관계가 되었으면 정말 좋

겠어요.

연구반 활동하면서 달라진 점

현숙: 버스 안에서 성추행 경험이 많았는데, 이전에는 어

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있으면

큰소리로 경고를 한다거나 뭐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

어요. 그렇게 자신감있게 행동하고 대처를 하니까 남자

들이 당황해 하며 피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

줬어요.

선희: 책이나 잡지 속에서 여성을 상품화하는 걸 예전에

는 그냥 지나쳤지만 이제는 눈여겨보고, 아이들과 토론

도 하면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은영: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막연했던 성폭력의 동

기나 사례들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요.

은미: 저는 남자를 보는 게 달라졌어요. ‘설마 그럴까’

했는데 이제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행

동하는 데 있어서도 잘 할 수 있게 되었구요. 예를 들면

현숙이처럼 버스 안 성추행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안다든지요.

어른들이나 남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은미: 여성의 노출에 대해 비난하고 그것이 마치 성폭력

의 원인인양 모는 것에 대해 잘못됐다고 말해주고 싶어

요. 그렇다면 유치원생이나 할머니에 대한 성폭력은 어

떻게 볼 것인가라고 그들에게 물어 보고 싶구요.

은영: 중국에선 성폭행을 하면 사형이라고 해요. 그런 나

라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선희: 학교 앞에서 성기노출하는 아저씨들 제발 하지 말

라고 말하고 싶어요.

현숙: 남자들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어요. 충동적으로 행

동하기보다 뒷일을 생각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

라고 말하고 싶어요.

민경: 성폭력이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와 잘 빠졌다”그렇게

말하는 것도 성폭력에 해당하잖아요. 아무렇게나 여자들

을 대하고 성폭력을 일삼는 남자들은 만약 자기집 식구

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분명히 분노할 텐데 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영웅호

색’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사회에서 남자들이 여

자를 밝히는 것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부추기는 그런 문

화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천 여고 '여성문화연구반'지도교사 최선미선생

인천 여자고등학교의 ‘여성문화연구반’은 영어과목

을 맡고 있는 최선미 선생이 우리사회 성폭력문화와

왜곡된 성지식, 그리고 남녀차별에 관한 문제를 아이들

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해 보고자 작년 97년에 만든 특

활반이다.

“이전에 남자중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성에

관한 아이들의 생각이 심각할 정도로 왜곡돼 있다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강간, 성폭력도 남녀가 같이 즐기는 것

으로 생각하고, 여자를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물이나

하나의 상품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유

흥문화에 젖어있고, ‘빨간책’을 성교육 교과서로 삼고

있는 남자아이들의 사고를 돌리려고 성교육을 시도해 봤

지만 실패했어요. 그 문제를 과제로만 남겨두었다가 이

제 이곳 여자고등학교로 옮겨와 다시 시도를 하게 되었

습니다”는 최 선생의 말처럼 특활반을 만들게 된 계기

는 올바른 성교육이 부재한 교육현실에서 왔다.

아이들의 참여와 호응이 높아 ‘연구반은’ 현재 20여

명의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번 문화제는 여성문화

연구반에서 필요한 자료 등을 민우회에서 도움받고 있던

중 아이들과 함께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성문화연구반’에서는 아이들이 실생활에

서 느끼는 차별, 성폭력 등의 문제를 촌극으로 꾸며보

고 토론하면서 문제해결방안을 스스로 얘기해 본다거나,

성폭력의 원인에 대해 거리에 나가 여성과 남성을 인터

뷰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비디오를 보여줬을

때는 아이들이 성폭력이라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작년에 ‘역사 속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정신대’문

제에 관한 자료도 주고, 비디오도 보여주었더니 아이들

모두 경악하는 걸 보고, 최 선생은 아이들이 우리 역사

와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았

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정신대 할머니들이 있는 ‘나

눔의 집’도 방문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최 선생은 또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서로에 대

해 생각하는 것들이 참 많이 달라요. 남학생들은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게 대부분이고, 여학생들은 그런 남

성위주의 성문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학생

들은 성관계를 가지게 되면 그 후 자기를 포기한다거나

자신이 ‘버린 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이런

아이들의 생각을 자신있게 바꿔주기 위해 무엇보다 바른

인간관과 연결된 바른 성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학교의 성교육은 체육시간에 양호선생님이 생

식기, 임신과정, 낙태문제에 관한 비디오를 시청하게 하

는 것이 고작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같은 생식기 중심의

교육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가르쳐 주는 것에서부터

성교육은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차별, 성폭력,

성상품화 등의 문제들을 인식하도록 가르치면서 성폭력

과 같은 문제가 그저 ‘성’적인 문제가 아닌 인간의 존

엄성을 해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최 선생의 말이다.

<이김 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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