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정당성을 지닐 수 없는 단어 ‘폭력’
절대 정당성을 지닐 수 없는 단어 ‘폭력’
  • 황정미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09.02.06 11:33
  • 수정 2009-02-06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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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연쇄살인사건에도 불구하고 폭력에 관대
여성·약자 대상 행위는 원칙에 입각한 대응책 필요
경기불황으로 일상이 스산하기만 한 요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다.

재개발이라는 이름 앞에 수십 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철거민들이 그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높이 쌓아올린 망루가 덧없이 불타버렸고, 그 안의 어둠 속에 대치하던 시위대와 진압경찰이 희생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요 며칠 미디어는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른바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살인행각을 연재하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도심 한복판 높은 망루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화재, 타인의 눈을 피해가며 내밀한 차 안과 으슥한 산기슭에서 자행된 살인사건은 매우 다른 외양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들로부터 우리가 상처입고 고통 받는 이유는 다르지 않다. 바로 ‘폭력’ 때문이다.

“폭력이 좋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에 모두가 흔쾌히 동의해 주지도 않는다. 그만큼 폭력이란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이자 사회의 한 요소라서, 아무리 싫어도 완전히 없앨 수 없는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에는 매우 인색해도 폭력에 대해 의외로 관대하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전체주의에 대한 번뜩이는 분석으로 명성을 얻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폭력은 본래 도구적이다. 좋게 쓰면 좋고, 나쁘게 쓰면 나쁘다는 정도가 폭력의 양면성에 대한 우리들의 상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폭력을 과연 ‘좋게’ 쓸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목적을 위해 폭력을 쓰더라도 결국 폭력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생명을 상하게 하며, 남은 자들에게 상처와 분노를 새긴다.

용산참사의 책임 소재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쟁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시위대의 폭력 때문에 진압도 폭력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정당화는 너무 안일하다.

시위대는 자기 주머니를 털어 시위용품을 준비했을 터이고 시위 과정에서 위법성이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진압경찰의 폭력 행사는 결코 시위대의 그것과 같은 저울에 올려놓을 수 없다.

둘째, 수많은 희생자를 낸 폭력사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어디론가 실종되어 버렸다. ‘죽은 사람만 억울한’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은 전형적인 인권 후진국의 모습이다. 폭력 자체를 경계하고 생명의 손실을 안타까워하는, 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자임하는 성숙한 공권력의 모습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이상론일까.

한 명의 냉혈한이 일곱 명 혹은 그 이상의 여성의 생명을 유린한 끔찍한 사건은 폭력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굳이 ‘사이코패스’가 아니더라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사적 공간 안에서 상습적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들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가정폭력, 성폭력에 대한 공권력의 개입은 이상하게도 가해자에게 관대하다. 한 예로 강간 범죄의 발생 건수는 1994년 5650건에서 2006년 7942건으로 크게 늘었지만 구속자는 2945명에서 2285명으로, 구속률은 52.1%에서 28.8%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내밀한 사적 공간에서 한두 명이 자행하는 폭력의 피해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여성이나 약자를 희생자로 삼는 폭력에 대해서는 원칙에 입각한 대응과 예방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반면, 폭력적 수단으로 법과 질서를 회복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다시 아렌트의 말을 빌려본다면, 폭력은 수단이므로 정당화될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다.

안타까운 생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찰과 책임성이 한층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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