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의 여성 인권과 양성평등
가정에서의 여성 인권과 양성평등
  • 강선미 / 전문기자·여성학 박사
  • 승인 2009.02.06 11:31
  • 수정 2009-02-06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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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어와 여자는 하루에 세 번씩 때려야 부드러워진다’는 속담이 성행하던 무렵인 1983년. 민주화의 요구가 대중화되기 시작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군사 정권과 시민들의 마지막 기 싸움이 전개되던 당시 ‘여성의전화’가 탄생하였다.

지난 1월 29일 여성의전화는 전국 지부 대표들과 관련 인사들을 초청하여 지난 25년간의 운동 성과를 총정리 한 두 권의 책 ‘가정폭력: 여성인권의 관점에서’와 ‘여자, 길을 내다’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그간 여성의전화는 전국 25개 지부와 1개 지회 그리고 약 1만 명의 회원과 200여명의 상근자를 보유한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여성의전화는 가정에서 매 맞고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에게 상담과 쉼터를 제공하는 한편, 이들의 문제를 대변하여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여성 삶의 변화를 위한 투쟁과 협상에 앞장섰다.

특히 이들의 꾸준한 활동은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아마도 가족에서의 양성평등 실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집단을 말하라고 하면, 주저 없이 여성의전화 상근자들과 그 회원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는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전통 속에서 당연시되고, 사적 영역에 속해 드러날 수 없었던 아내 폭력의 문제를 공공의 이슈로 전환시켰다는 데 있다.

여성의전화는 25년을 한결같이 전통적인 공적 영역에서의 ‘인권’과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가정 영역에서의 ‘여성 인권’과 ‘가족관계에서의 정의와 평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는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인권의 진전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가시적인 결과는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며 아내 폭력을 덮어왔던 한국의 가족 문화를 일대 혁신한 것이다. “가정 구성원 사이의 신체적, 정신적 또는 재산상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명백한 범죄행위로 규정한 법이 등장하면서, 가정 내 아내 폭력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여성의전화에 들어온 상담 건수는 법이 시행된 1998년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고, 이듬해에는 또 다시 두 배로 증가하는 폭발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 2004년부터는 여성부가 3년마다 가정 폭력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 인권과 가정 민주화를 향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출판기념회에서 선 보인 ‘가정 폭력’ 연구서에 의하면, 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아내에 대한 폭력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가해자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

특히 가정 폭력 개념이 아내 폭력, 아동 폭력, 남편 폭력, 노인 폭력 등 다양한 가정 폭력의 일부로 물 타기되면서 법 제정의 핵심에 있었던 여성 인권의 문제가 세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는 법조인들과 사법 경찰들의 의식 변화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이들에 대한 양성평등 교육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여성의전화는 창립 25주년을 계기로 ‘가정 폭력’이 아닌 ‘아내 폭력’을 키워드로 삼고, 가정에서의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새로운 여성인권운동을 시작했다.

앞으로 있을 30주년 행사에서는 아내에 대한 신체적, 성적 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의 대중화를 넘어,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고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인격적 주체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 혁신의 성과를 자축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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