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들은 잠시 접고 여유롭게 한 해를 시작할 채비를 할 수 있는 설 연휴가 다가온다. 하지만 설이 휴가로 다가오기보다는 평소보다 더 분주한 근무일로 느끼는 여성들이 있다. 온 국민이 안전하고 편안한 설을 맞을 수 있도록 설 연휴 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나 설 근무기를 들어봤다.
환자를 가족 삼아 설날 근무
이미영 외과의사·윤정인 간호사
종합병원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몸과 마음이 지친 입원환자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응급환자를 위해 설에도 24시간 대기 중이다.
환자를 가족 삼아 19년간 명절 근무를 해온 적십자병원 윤정인(39·오른쪽)입원병동 간호사는 ‘명절 근무의 달인’으로 병원에 알려져 있다. 환자의 건강을 곁에서 종일 지켜봐야 하는 간호사들은 명절의 반 정도는 쉬고 반 정도는 일하는데 공교롭게도 19년간 일하는 반에 속했다고.
“간호사는 음지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도 몰라줘도 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환자나 동료들이 편하게 명절을 보낼 수 있잖아요. 물론 마음 한편에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환자분들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윤 간호사는 “환자를 가족 삼아 명절을 보내는 것이 익숙해졌다”며 “떡국, 나물 등 설날 음식을 제공하며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십자병원 외과의사 이미영(40)씨는 설 연휴 근무 중 가장 힘든 점은 가족을 만나고 싶어 퇴원을 조르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족과 함께 설을 보내려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설 연휴에는 입원 병동이 한산합니다. 위급한 환자가 아니면 금식하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외출을 허가하지만 안정을 요하는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조를 때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설날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위해 서약서까지 쓰고 외출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가사노동이 두려워 설을 앞두고 퇴원 일자를 미루거나 입원 일자를 당기는 주부도 있다고.
한국인 환자가 설을 쇠기 위해 빠져나간 병동에는 외국인 환자들이 모여 명절을 자축하는 이색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지만, 몇 해 전부터 외국인 환자들이나 이들을 문병 온 외국인 친구들이 모여 설을 보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병실을 아지트로 서로의 명절문화를 소개하거나, 이벤트를 벌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설 연휴 응급실은 복통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는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푸짐한 음식을 과식하다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몰려든다”며 “훈훈한 설을 보내기 위해 조금 덜 먹으며 건강도 관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월따라 귀성풍경 달라져”
김현숙 서울열차승무사무소 여객전무
새마을·무궁화호 철도 경력 23년차인 김현숙(44) 서울열차승무사무소 여객전무는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 당일 귀성열차를 탄다. 승무원이 된 이후 명절 당일 고향집에서 휴가를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매년 명절마다 김 전무는 인파로 북적이는 열차 안에서 보내야 했다. “명절이면 불어난 귀성 인파로 열차 발차 횟수도 늘고 차내도 혼잡하기 때문에 승무원들은 이날 역할이 더 중요해져요. 아마 승무원들이라면 거의 명절에 출근한 기억이 몇 번쯤 있을 거예요.”
입사 초기엔 약간 서러움도 느꼈다. “어릴 적엔 열차에 사람들이 많아 일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집에 가는데 나만 못 간다는 생각에 서글펐는데 해마다 경력이 쌓이고 일이 익숙해지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생각도 들고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최근에 또다시 고민거리가 생겼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명절이면 엄마와 함께하지 못해 많이 서운해 하기 때문이다. “자라는 아이들이 다른 가족들은 명절이면 엄마, 아빠랑 친지댁도 방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없이 명절을 보내야 하잖아요. 특히 작은아이가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많이 서운해 하네요.”
그럴 때마다 김 전무는 “엄마가 출근을 해야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단다. 이런 날 아무도 열차를 운행하지 않으려고 하고 승객을 챙기지 않으려 하면 고향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 고향에 갈 수 없잖니”라며 딸을 설득한다고. 20여 년간 귀성열차를 타다 보니 열차 안팎의 풍경이 많이 변화한 것을 느낀다. 기차역 주변 풍경도 변했고 기차를 타는 승객들도 변했다.
“예전엔 차내가 혼잡하다 보니 어쩔 땐 3호 차에 좌석을 끊은 승객이 1호차에서 인파를 뚫지 못해 서서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열차가 중간 역에서 정차할 때 부모가 아이들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전에 비해 차내가 덜 붐비고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낮술을 드시고 난동을 부리는 분들도 거의 없어졌어요.”
그래도 긴장의 끈은 놓지 않는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는데 여행이 편안해야죠. 승객들이 가끔 하차하시기 전에 고맙다며 음료수도 주시고 할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올해도 승객들이 최대한 안전하고 편안하게 고향에 다녀오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취약계층 위해 따스함도 전달
박은순 성남중원경찰서 경감
명절 전후는 민생침해범죄가 증가하는 것에 대비해 금융기관과 편의점 같은 현금 다액 취급업소에 대한 업무가 강화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위치상으로 외진 곳이나 경비인력 등이 취약한 개소를 파악해 인원을 배치하고 112 순찰차가 보이도록 순찰을 돌면서 범죄 분위기를 사전에 제압하는 일도 한다.
“요즘에는 경기침체로 생계침해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여자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편의점이나 여자 혼자 사는 주택지를 중심으로 순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도난, 강도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범죄 예방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특별 방범활동은 연휴가 마무리되는 27일까지 2주 넘도록 하루도 쉬지 않고 진행된다. 특히 관할 지역에 진입하거나 빠져나가는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도로 주요 요충지에 검문소를 설치·운영하기 위해 한파 속에서 8시간 가까이 서 있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처럼 연휴 때 쉬지 못하는 것은 이미 생활이 됐다.
박 경감은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는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쉴 때는 두 배로 일하는 직업”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설 연휴는 박 경감뿐만 아니라 다른 관할지역 경찰들도 특별방범, 형사활동 계획을 추진하는 기간이다. 지구대, 형사, 상설부대 등 가용 경력을 최대한 활용해 금융기관, 금은방 등 범죄 취약지 주변에 예방순찰을 강화하고 강·절도, 갈취폭력배 등 생계침해범죄를 집중 단속 중이다.
또한 시장을 많이 찾는 기간인 만큼 재래시장 주변 교통정체 등을 적극 관리하면서 재래시장 활성화를 지원하고 재래시장 주변 지구대, 교통순찰차를 최대한 배치해 교통지체 등을 해소하면서 이용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역경찰로서 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역할을 수행하며 특히 성폭력 등 여성 피해자에 대한 초동조치에 각별히 신경 쓰는 박은순 경감. 그는 “성남지역은 이미지와 달리 어렵고 힘든 다세대 주택 거주자, 홑몸 어르신들이 많은데 이들이 범죄피해 대상이 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민생치안이 중요한 시기인 만큼 생계형 범죄발생을 막기 위해 더욱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