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체벌은 다반사였다. 고학년이던 어느 날 평소에 순한 선생님으로 여겼던 담임선생님께서 휴식 시간 무리 속에서 싸우고 있던 두 아이를 호명하여 앞으로 나오게 했다. 웅성대던 아이들도 순간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두 아이를 마주서게 하여 10대씩 뺨을 때리도록 했다. 처음에 아이들은 ‘킥킥’거리며 한두 대씩 때리더니, 급기야 ‘철썩’ 하도록 뺨을 때렸다. 체벌이 끝난 후 두 아이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토록 순한 선생님이 아이들을 원수지간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남북관계가 그랬다고 생각해 왔다. 외세가 남북을 둘로 갈라놓더니 남북을 이간질로 싸우게 하고, 오랫동안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어왔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들어 외세의 한 축이 무너지고 난 후에도 남북관계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심지어 1994년 6월 한반도에는 전운이 시커멓게 몰려왔다. 미국의 특사에 의해 사태는 반전되었으나 남북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1999년 미국 클린턴 정부의 페리 프로세스에 의해 비로소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가능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더 이상 미국은 순하지만 교활한 샘 아저씨가 아니었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남북 화해 무드의 방해자이자, 장해물로서 본색을 드러냈다.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비무장지대(DMZ)를 열어 경의선이나 동해북부선을 연결시키고자 할 때 반대했던 것이 한미연합사, 사실상 미군이었다. 미국의 반대가 계속되었더라면 개성공단도 만들어질리 없었다. 또한 2002년 제2차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시작된 북·미 관계의 지루한 샅바싸움에 오히려 싸움의 중재자는 남한과 중국이었다.

6자 회담의 공방 끝에 결국 2007년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이루어냈고, 급기야 2008년에는 북핵 불능화 2단계까지 근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이래로 남북관계는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기대감이 크지만, 한반도에는 엄동설한의 밤이 깊다. 남북관계에 여명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대화는 무조건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화해를 청하여 대화를 재개하기에 새해만큼 좋은 때는 없다. 한반도에 번영과 평화를 가져오고 파국 일로로 치닫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국 간 대화가 시급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