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여성정책이 시작되면서 ‘양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양성평등정책이 남성들에게 유리하게 보일 때도 있다. 국민연금법의 유족연금제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 국민연금법에서는 가입자가 사망한 경우 배우자에게 지급되는 유족연금의 수급 조건이 성별로 크게 달랐다. 남편이 사망한 아내는 수급권이 발생한 때부터 5년간 유족연금을 받고 나서 50세까지 수급을 중지했다가 51세부터 다시 받았다. 반면 아내가 사망한 남편은 특별한 신체장애 조건이 없는 한 61세가 되어야 연금수급이 가능했다.

이 조항은 지난 2007년 7월 23일 국민연금법이 개정되면서 배우자 사망 시 남녀 모두 수급권이 발생한 때부터 3년간 유족연금 지급, 이후 56세부터 지급 재개하는 방식으로 통일되었다.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의 증가에 따른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남성들에게 오히려 차별적이었던 수급제한 요건을 폐지하여 양성평등의 진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적용된 평등개념은 ‘형식적 평등’ 혹은 ‘기회의 평등’이다. 이는 사회경제적 지위나 성별, 연령, 성적 지향, 능력의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그러나 형식적 평등은 삶의 내용까지 고려한 평등을 보장하기 힘들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연금은 적게 내지만, 보다 많은 유족연금을 받는다.

국민연금공단의 ‘2007통계연보’를 필자가 분석해 보니 국민연금 가입자 중 남성들은 매달 평균 16만8590원, 여성들은 10만5760원 정도를 연금으로 불입하였다. 이는 평균임금의 성별격차가 100 대 62.8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일 기간을 근무한 연금 가입자가 사망한 경우, 그 배우자인 여성과 남성이 지급받는 평균 유족연금은 약 3 대 2의 비율로 여성들에게 유리하게 된다. 

게다가 여성들의 국민연금 가입률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남성들은 아예 유족연금을 기대할 수 없다. 일을 해도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여성들도 많고(2007년 12월 현재 전체 여성경제활동인구 중 국민연금 미가입률은 31.6%),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연금 가입 적용 대상이 아닌 여성들도 절반이다. 이는 많은 서민 남성들에게 자부심보다는 고통을 안겨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개정된 연금제도에서도 나타나는 남성불평등을 시정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양성평등정책에서는 삶의 조건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고통과 이익을 나누는 과정을 중시하는 실질적 평등의 원칙을 강조한다. 실질적 평등의 원리는 국민연금법에 군복무크레디트, 출산크레디트 제도를 도입하게 만든 이론적 배경이자, 경제적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는 없는 출산, 육아, 노인과 환자 돌보기 등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가치나 보상의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공헌을 인정하는 법과 정책이 보다 구체화되어 연금 축적률이 높아져야 남성들의 불평등 여지도 줄어든다. 양성평등의 마지막 지향점을 실질적 평등의 실현에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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