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않을 용기’를 키우자
‘사랑받지 않을 용기’를 키우자
  • 김영옥 /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 승인 2009.01.09 11:12
  • 수정 2009-01-09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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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표 여성주의자 알리스의 가르침…새해 결심으로 품어볼 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두려워하는 여성들에게 용기와 격려 메시지
새해가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하는 의식이 있다. 새해 결심이 바로 그것이다. 모두들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위해 중대한 결심들을 마음속에 꾹꾹 새겨 넣는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금연, 영어 배우기,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 함께 보내기 등 누구에게나 낯익은 내용들이 늘 반복적으로 리스트에 오른다.

삶이 점점 더 유동적으로 되고 사회안전망의 붕괴가 더 심화될수록 새해 결심들은 꼭 새해 초가 아니라도 일년 내내 아침마다 새롭게 다져지는 자기계발의 항목들과 점점 더 유사해진다.

그러나 아주 잠시라도 어떤 ‘원형적 초심’의 상태로 돌아가 자신이 어떤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어떤 이들과 손을 잡고 있는지 질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기계발 추구가 자칫 빠져들기 쉬운 근시안적 맹목성과 고독한 폐쇄성을 벗어날 수 있는 작은 해방의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해방의 시간 속에서 품어봄 직한 새해 결심 중 하나가 ‘사랑받지 않을 용기 키우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받지 않을 용기’는 독일의 페미니스트 ‘큰 언니’ 알리스 슈바르처가 최근 몇 년간 심각한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 페미니즘 흐름에 맞서 명쾌한 대항언설을 만들어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사랑받지 않을 용기는 지나친 해방으로 인해 여성성을 상실하고 그 결과 더 이상 남성들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떠는 여성들에게, 작가가 불어넣어 주는 격려의 힘이다.

남성의 욕망을 매개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도록 강요받아 온 여성들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외적인 영역에서 누리게 된 어느 정도의 해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를 반복적으로 되뇌며 가부장제 사회가 유행의 입을 빌려 행사하는 명령과 조롱에 휘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슈바르처는 ‘괜찮아, 너 자신을 믿어 봐. 네 몸과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봐, 그것으로 충분해’라고 경쾌하게 말한다.

사랑받기 위해 다시 저들이 주장하는 모성과 여성성의 강령을 따르고, 유행이 요구하는 취향에 자신을 맞추는 여성들의 그 실천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사랑을 받아봤는데, 그것이 너무나 황홀하고 너무나 찬란하고 너무나 깊고 그윽해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더라.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더라’가 아니지 않은가.

약속된 사랑은 실체가 모호하고 검증된 바가 없으며, 제공된다고 해도 일회성에 그치기 일쑤다. 설혹 사랑의 제공이 어느 정도 지속된다고 해도 그것은 더 중요한 다른 가치나 행복과 맞바꿔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래 사랑은 ‘결핍’의 구멍 주위로 형성된다는 정신분석의 차원뿐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계약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문근영, ‘국민 여동생’인 그녀에게 SBS가 연기대상을 수여했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 그녀는 너무 놀라서 당황해서, 무서워서(!) ‘대상을 받는 여배우’의 역할을 전혀 연기하지 못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떨리는 손은 거의 꽃다발을 놓칠 정도였으며, 가까스로 한두 마디 끌어올린 수상소감은 흐느낌 속에 묻혀버렸다. 역시 사랑받는 ‘국민 여동생’이었다. “이렇게 큰 상을 받으니 무섭다. 계속해서 연기를 하고 싶은데 앞으로 이 상이 부담이 될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은 상업주의가 판치는 현실에서 정말 새겨들을 만했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는 상징적 가치나 권력이 깃들지 못했다. ‘대상을 받을 만하니까 받는, 그만큼 능력 있고 훈련된 여배우’로서 그에 합당한 제스처·연기와 함께 그 말을 했다면 그녀는 드디어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여배우로의 변신을 멋지게 성공시키는 쾌감을 우리 모두에게 주지 않았을까. 그 누구보다 겸손한 나눔에 앞장서고 연기도 잘 하는 그녀가 그렇게 변신에 성공했더라면 그것은 한국에서 ‘여배우’라는 기표가 의미하는 바와 유통되는 방식까지도 바꾸면서 대중산업의 문화정치학을 조금 더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문근영의 대상 수상식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여성이 사랑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노련한 기술을 요구하는 일인가를 확인시켜 주었다. 2009년에는 그러니 자매들이여, ‘사랑받지 않을 용기’를 키우고, ‘노련하게 사랑받는 기술’을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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