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된다. 지금까지는 초등학생이라 시험점수가 마땅찮아도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 친구가 전 과목을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선행학습을 해도 그것이 모두 쓸데없는 짓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줬다. 운동과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아이를 그냥 뒀다.

그런데 아이는 그것마저도 힘들어했다. 사실 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일주일에 3일 3시간씩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직 일주일에 3~4번 테니스를 배우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국제중학교 운운하는 것들이 아직은 내 아이와 무관한 소리로 들리는 걸 보면, 내가 보통 부모들보다는 상당히 뒤처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돌아가는 분위기로 볼 때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를 생각해보니 슬금슬금 불안감이 밀려오는 것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나처럼 둔감한 학부모가 이것을 위기로 느낄 정도라면, 엄청난 정보를 교환하며 미리미리 준비하던 부모들에게 이 시대는 이미 전쟁이었던 것이리라.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 나는 집 근처 영어 학원을 찾아갔다. 언제나 정신없이 바쁜 엄마 대신 이모가 조카와 놀아주며 가르쳐주던 영어의 수준은 학원 시험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내가 고등학교 때나 풀던 수준의 문제들을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 테스트용으로 풀어보라고 내민 것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순식간에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멍청한’ 엄마가 되어버렸다.

테스트 전에 시험문제가 어려워도 절대 주눅 들지 말라던 나의 조언을 귀담아 들은 우리 아이는 당혹한 기색이 완연했지만 의연하게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물론 점수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 정도 점수는 초등학생에게 ‘당연한’ 것이지만, 학원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되었고, 우리 아이는 ‘초급반’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세 번씩 하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여자 아이가 테스트를 받으며 엉엉 우는 것을 보면서 난 우리 아이의 여린 손을 잡고 학원을 나왔다. 애는 아무 말이 없다. 겁을 잔뜩 먹은 눈치다. 그래, 이게 다 엄마 죄다. 미리미리 챙겨주지 못한 엄마 죄다. 이렇게 뇌까리면서 뿌연 하늘을 쳐다봤다.

이제 우리 아이는 멀쩡한 학교 공부를 내팽겨 둔 채로 일주일 내내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할 것이고, 12시까지 학원숙제를 하느라고 졸린 눈을 비벼댈 것이다. 이젠 나도 여느 엄마처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구덩이를 향해 나 있는 길에 우리 아이를 세워놓고 밀어대기 시작했다. 그 길은 길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에 내 아이를 밀어넣었다.

돌아오는 봄에 피어나는 라일락 향기를 맡을 수는 있을까라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이 또 든다. 가슴이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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