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여성들과 민주주의
기지촌 여성들과 민주주의
  • 원민경 / 변호사, 민변 여성인권위원장
  • 승인 2009.01.02 13:19
  • 수정 2009-01-02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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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법안을 통과시키겠다며 내달리는 여당과 민주주의의 조종을 울리는 악법을 막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야당 사이에 ‘입법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민주주의의 장례식을 치르게 될지 몰라 숨죽이고 있는 이 때, 기지촌에서 수십 년간 일한 선물로 잊고 싶은 과거와 질병만을 껴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민주주의의 운명이 흔들리기 전,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 여성들을 왜 외면했던 것일까.

지난 10년, 여의도에는 민주주의가 잠시 찾아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들의 삶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이 여성들은 민주주의를 만져보지도 못했다.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20년간,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기지촌의 군대 성매매에 직접 개입하고, 공식적으로 관리했던 사실이 각종 정부 기록물에 나온다.

미국 정부는 ‘미군의 건강과 안락’을 위해,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의 강화’와 ‘외화 획득’을 위해 성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되던 때에도 공식적으로 기지촌을 설치하고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했다.

법에는 ‘누구라도 윤락행위를 유인 또는 강요하거나 그 처소를 제공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기지촌의 성매매가 (성 구매자인 주한 미군의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지촌 지역의 정화사업을 실시하고 관리함으로써 마치 윤락행위 알선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

지방 공무원들은 이 여성들에게 “여러분은 나라를 살리는 애국자니, 긍지를 갖고 살라”고 부추겼다.

성병 검진표를 가슴에 달지 않은 여성은 클럽에서 일할 수조차 없었다. 성병 검진표를 부착하지 않은 여성은 무조건 강제 수용되어야 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강제수용이었는가.

성병 강제 검진 후 성병 감염자로 밝혀지면, 바로 ‘하얀 집’이라 불리던 수용소에 갇혔다. 수용소에 들어가면 최소 15일에서 1개월까지 미군이 제공한 독한 항생제를 맞고 ‘깨끗한 몸’으로 확인된 여성만 나올 수 있었다.

한·미 군사위원회의 우리 측 위원장은 “미국이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관리 등을 요구했기 때문에 수십 차례 평택, 의정부 등 미군기지 근처 클럽을 답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자금으로 직접 의정부에 기지촌 정화사업 비용으로 1억원을 내려 보내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대규모 한·미 군사훈련이 있을 때에는 이동하는 미군부대 인근에 일본군 위안소를 그대로 본떠 지은 위안소가 지어지곤 했다.

지금 기지촌의 여성 노인들은 인생의 종착점이 멀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9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 이사회 의장국이 되었다. 경제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희생된 여성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 없는 발전은 괴나리봇짐 지고 비행기 타는 격이다.

기지촌 여성들의 곤한 삶에도 하루빨리 민주주의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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