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방희영

미술교육 재료는 이미 규격화된 틀로 만들어져 약간의 손질로 결과물을 얻는 빠른 미술교육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작업을 하는 작가들 또한 빠른 결과물을 얻기 위해 다 만들어진 캔버스와 한 번 사용하고 휴지처럼 버리는 일회용 팔레트, 칠하면 이른 시간 내 굳어지는 물감 등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방희영은 현대문명의 대표적인 디지털적 표현수단인 기계적인 반복성에 도전하듯 순수 아날로그적 제작 방법으로 유화의 모체라 할 수 있는 ‘템페라’를 고집스럽게 선택하고 있다.

캔버스와 물감을 손수 제조하는 과정이 불편하지만 화면에서 투명성과 채색의 깊이감 등을 얻기 위해 그는 템페라를 선택하고 있다. 템페라는 서구의 전통 기법임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 풍미와 섬세함, 소박함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우리에게 생소한 템페라 기법은 프레스코와 더불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회화기법의 원류이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회화기법의 뿌리이기도 하다.

템페라 기법은 기존의 캔버스 위에는 잘 고착되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에 그는 중세의 옛 장인들이 썼던 방법인, 천연 마천을 패널에 붙인 뒤 아교로 칠하고 그 위에 제소(gesso)를 발라 대리석같이 희고 견고한 면을 만들어 간다. 이를 위해 천연 제소를 수없이 반복하여 밑칠하고 곱게 갈아내는 힘겨운 긴 과정을 기도하듯 차분한 마음으로 캔버스 구석구석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그래서 방희영의 작품은 결과보다는 과정에서부터 장인적인 충실함을 보여준다.

꽃과의 영원한 조우(遭遇)

예나 지금이나 많은 작가들은 꽃을 즐겨 다룬다. 방희영 또한 꽃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다루는 꽃은 한두 송이가 아닌 군집을 이루는 만개한 꽃들로 화면을 장식한다. 꽃은 화사함을 지나 찬란하기까지 하다.

방희영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감정을 숨 고르기 하듯 화면을 다듬어가는 것이다. 갓 피어난 꽃잎은 봄바람에 실려 허공에 피어오르고 어느 꽃잎은 빛이 되어 내려오듯 축복의 꽃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특유의 감성으로 읽어내는 꽃의 표현은 부드러움과 함께 존재한다. 그의 꽃은 사실적 묘사나 자연의 모방적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꽃의 이미지를 빌린 순간의 감정들을 재현하고 있다.

 -작가노트 ‘나에게서 멀어지는 나’ 중에서-

그의 또 다른 자신은 그림 속에 꽃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고 “보이지 않는 순간에 보이는 듯한 본질”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고뇌와 갈등과 그리고 삶의 이야기들을 꽃이라는 암시적 매체로 표출해내는 것이다.

방희영은 꽃을 자유로이 펼쳐 놓음으로써 심적인 억눌림과 고뇌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하며 시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대기의 흐름까지 꽃의 형상을 빌려 가시화한다.

또한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접점에서 잠시 멈춰 선 시간에는 떠남과 이별이란 심적 갈등마저도 느끼게 한다.

이렇듯 방희영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듯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개방해 놓은 화면 속에 자신의 체험과 깨달음 그리고 작은 소망들을 채워넣고 있다.

1986년 서울 예술고등학교 미술과를 졸업하고 일본 문부성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 쓰쿠바대학 예술학군(학부) 회화과 및 예술학원 예술연구과(대학원)를 졸업했다. 개인전 6회를 ‘꽃과 나’ ‘나에게서 멀어지는 나’ ‘손길’ ‘속삭임’ ‘내리는 빛’이라는 제목으로 가진 바 있다. 또한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다수의 단체전과 기획전을 가졌다. 현재는 평택대학교, 예원학교에 출강하면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