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지음/ 조현준 옮김/ 문학동네/ 2만2000원)
‘퀴어이론’의 창시자이며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로 불리는 주디스 버틀러의 문제작 ‘젠더 트러블’이 출간됐다. 1990년 출간한 이 책으로 주디스 버틀러는 페미니즘 안팎에 일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30대 중반 나이에 페미니즘 세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무엇이 이 책을 그토록 논란거리로 만들었을까. 바로 기존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정면 도전 때문. 버틀러는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해 온 섹스와 젠더, 섹슈얼리티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사회가 반복적으로 주입한 허구적 구성물이라 비판하며 그 바탕에는 이성애자만이 주체라고 주장하는 ‘가부장적 이성애 중심주의’가 있다고 폭로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제1부의 주제인 ‘여성 없는 페미니즘’에서 알 수 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유명한 주장조차 “태어나는 여성주체와 만들어진 여성주체, 몸과 정신을 이분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자신이 레즈비언이기도 한 버틀러는 보부아르 외에도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크 라캉, 미셸 푸코,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 현대철학자 및 여성학자들을 ‘퀴어이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조망했다.
‘퀴어’란 원래 동성애자들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호칭이었으나 버틀러로 인해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고정하는 모든 담론에 저항하는 전복적인 표어가 됐다. “남성성과 여성성,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제도 담론의 권력 효과”라는 버틀러의 주장은 페미니즘 이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까지 포함하는 소수자의 섹슈얼리티 문제로 확대시켰다.
주디스 버틀러는 ‘난해한 글쓰기’로 악명이 높은 학자다. 36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인 이 책 또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기존의 다른 페미니즘 이론과의 비교 차원에서 한번쯤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다행히도 옮긴이의 해제를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