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기획하는 젊은이로서 ‘미혼모’ 조명한 영화 ‘과속스캔들’
다각적·사회적으로 문제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 유쾌하게 전달

10대 미혼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10대 여성들의 임신은 기본적으로 일탈적인 성행동이나 성적 문란의 결과로 상상되기 때문에 임신을 하더라도 의료 및 사회적 서비스를 이용하기가 어렵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고, 아이를 낳을 경우 아이 양육을 위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고 보고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미혼모는 자기 스스로가 만든 곤경으로 인해 인생이 꼬인, ‘정상 가족’ 밖에 있는 주변인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불행한 삶’을 기꺼이 살겠다는 1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아이는 어른이 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끝낸 후에 결혼을 하고 낳아야 된다는 정상 가족 규범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운영하고자 한다.

미혼모의 이야기는 사실 다루기 어려운 이슈다. 이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물론이고 사회적·정서적으로 미성숙한 10대들이 부모가 된다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이 다루기 어렵고, 우울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만든 코믹 영화가 있다. 우울한 연말에 개봉된 ‘과속 스캔들’은 10대 남녀의 성의 (속도) 위반 문제를 새로운 방식의 가족 구성 속에 안착시키면서 웃음을 유발한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 영화에서 나에게 꽂힌 대사는 “미혼모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아요”였다.

이 영화의 황정남(박보영 분)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혹은 아이를 책임질 남자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 오직 그 사실로만 자신의 정체성이 구성되고, 그 정체성에 준해서 살아야 된다고 보는 미혼모에 대한 사람들(영화에서는 아버지)의 인식에 질문을 제기한다. 왜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엄마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항변한다. 그 아버지는 10대에 자기를 임신시켰지만 자기 인생을 구상하는 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아이를 낳은 10대 여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그 여성이 누구든 상관없이 그녀는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그녀는 어머니로서 존재한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장래에 하고 싶어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그런 면에서 ‘과속 스캔들’의 황정남은 딸로서, 미래를 기획하거나 꿈을 꾸는 젊은이로서 그리고 연애의 주체로서 자신을 봐주기를 요구한다. 영화는 미혼모 문제는 좀 더 다각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시사를 해준다.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그녀는 사회적 성장을 필요로 하고, 또 가족이 줘야 하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 미혼모에 대한 한국 사회의 상상력에 도전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내는 이 영화는 속도 위반 문제를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의 문제로, 10대 남녀의 섹슈얼리티와 출산, 가족과 사회의 지원 체제와 확대시키면서 재미있게 엮어낸다.

이 영화에서 미혼모 황정남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와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한다. 또 노래를 하면서 자기 인생을 기획하고 싶어 한다. 물론 혼자 아이를 다 책임져야 한다면, 자식을 위해 일을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녀를 위해 쓸 시간은 하나도 없게 된다. 바로 생계를 위해 모든 시간을 일에 집중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10대의 어머니에게 너무 버겁다. 그래서 그녀에게 도움과 지원을 줄 가족 혹은 유사 가족이 필요하고,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미혼모를 둘러싼 ‘과속 스캔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전개는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를 보는 시각에 도전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황정남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미혼모이거나, 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인정해 주는 가족 혹은 유사 가족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는 사회적 환경이다. 그녀에게 애는 문제라기보다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해주고, 도와주는 존재다. 10대 여성이 아이를 낳았을 때, 우리는 아이와 10대 여성이 동시에 성장돼야 하는 존재임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10대 여성의 모성은 바로 아이와 같이 성장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그 모성의 일정 부분은 다른 사람들 혹은 사회가 같이 수행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사회적 자원과 능력으로 통합해내는 여러 방식들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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