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 12월 15일부터 통항(항공·선박운항), 통상, 통신(우편교류)을 망라한 전면적 교류가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의 항공기들이 매일 정기 취항에 들어갔으며, 양안의 주요 항구를 연결하는 바닷길도 함께 열렸다. 서신 왕래는 물론 우체국을 통한 상호 송금도 가능해졌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대삼통(大三通)이 창출할 경제적 효과가 매년 210억 위안(약 4조2000억원)에 달하고, 매년 400만 명 이상의 대만인이 중국을 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보면서 요즘 날씨만큼이나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현실에 더없이 마음이 무겁다.

남북관계는 연초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 3월부터 모든 당국 간 대화를 중단하고 접촉을 거부하고 나섰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합의 이행에 미온적인 새 정부에 대한 경고였던 셈이다.

7월에는 예기치 않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했으며, 10월에는 대북비난 전단 살포 등을 빌미로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가 단절되었다.

급기야 12월 1일부터는 군사분계선 통행이 제한되고 개성 관광이 중단되고 말았다.

남과 북의 기싸움이 개성으로 번지면서 시시비비를 가릴 여유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마저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입주 기업들은 공단 상주 인원을 절반으로 감축해야 했으며, 남북경협사무소도 폐쇄되었다. 지난 10월 이후에는 공단에 입주하려던 몇몇 기업들이 입주계약을 취소하는 사태마저 벌어졌다. 악화일로에 있는 남북관계가 계약 취소의 원인이었다.

개성공단은 정말 어렵게 시작되었다. 물도 없고 전기도 없고 도로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2003년 6월 첫 삽을 떠서 불과 1년 반 만인 2004년 12월 첫 제품을 만들어냈다.

그나마 제품의 판로도 준비가 부족한 상태였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남쪽으로 들여오는 것은 별 문제가 없었으나, 수출용의 경우 원산지 규정 때문에 미국, 일본 등 우리의 주요 무역 대상국들에 대한 수출은 거의 불가능했다. 개성공단에 대한 법·제도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은 추진되었으며, 현대 정몽헌 회장의 안타까운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통신·통행·통관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3만7000명의 북한 근로자와 88개의 우리 기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에게도 개성은 개혁·개방의 실험장이고, 향후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할 여부를 결정하는 시금석과 같은 곳이다. 따라서 개성이 실패하면 그 어느 분야에서도 남북경협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가 없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 진전은 강제가 아닌 필요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개성공단도 남북한 어느 한쪽의 강요에 의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다. 따라서 개성이 성공하면 북한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남북이 함께 활짝 웃고, 개성이 남북경협의 중심으로 거듭나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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