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은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이 이렇게 무서운 병인 줄 몰랐다!”

최씨의 49재에서 개그우먼 이영자씨가 한 말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자의 80%가 우울증 환자라고 본다. 그렇다면 OECD 국가 중 1위라는 자살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핵심 사안은 바로 우울증이다.

그러나 이 우울증에 대한 통념만큼 성편견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드물다. “마음을 다잡아야지 애가 둘씩이나 있는 여자가 자살이라니.” 많은 세인들이 최씨의 자살 이야기에서 드러난 오랜 심리적 고통을 ‘여성 특유의 병’처럼 말했다. 우리나라의 ‘2006 정신질환역학조사’에서 평생 우울증에 걸리는 여성들의 비율이 7.6%로 남성들의 3.6%보다 2배 이상 높다고 나타난 것을 보면,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만일 우울증이 실제로 ‘여성병’이라면, 자살에서도 여성들의 비율이 높아야 논리가 맞다. 묘한 현상은 자살률은 남성이 높다는 것.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07년도의 자살자 1만688명 중 남성 자살률이 67.8%로 여성보다 2.1배 높다. 이는 남성들이 택하는 자살의 방식이 여성들보다 극단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남성들이 ‘남모르게’ 앓는 우울증이 빙산의 저변처럼 크고 넓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문제는 고통과 위험 속에 있는 남성 우울증의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용찬 박사는 “외래 환자 중 20% 정도가 남성이다. 남자들은 자신을 잘 돌보지 않는 편이고, 정신질환이 있다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구에서 ‘커밍아웃’한 우울증 경험 남성들의 ‘고백’에 따르면, 남성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하다.

그 주된 요인은 ‘남성다움’을 규정하는 지배문화에 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남성들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가 이를 ‘스스로 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행위’로 낙인찍기 때문이다.

남성우울증을 비정상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는 막대한 의학적, 금전적 대가를 초래한다. 우울증은 심장병, 심장발작, 뇌졸중 등의 여타 질병과 연계되어 남성들의 기대수명을 단축한다.

이 밖에도 생산성 저하, 결근, 병가, 조기 퇴직, 보험급여 등 사회적 비용의 증가를 초래하며, 이들 가족의 돌봄노동과 취업 중단 등의 희생까지를 포함할 경우 간접비용은 직접적인 비용보다 2배 정도 높다(2008년 11월 OECD 정신건강뉴스브리핑).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만일 남성 우울증에 대한 ‘성편견’을 불식시키고 남성들의 서비스에 대한 접근력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성인지적 접근방법이 강구되지 못할 경우, 그 어떠한 정책이나 프로그램도 절반의 효과밖에는 거두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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