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냉가슴 앓는 여성 가장들
불황에 냉가슴 앓는 여성 가장들
  • 전희진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12.12 12:19
  • 수정 2008-12-12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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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에 단순 노동직 종사자 대부분
일자리·육아·주거 ‘3중고’… 편견과 냉담한 시선 ‘상처’

# 빵집 계산원으로 일하다 얼마 전 실직한 여성 가장 최윤정(가명·55)씨는 요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속이 탄다. 식당, 정육점 등을 돌아다니며 도우미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50세 이상은 나이가 너무 많다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일자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현재 노동부에 구직등록을 한 상태. 정신지체장애 3급인 29세 아들과 대학생 아들이 각각 동사무소에서 사무보조를 해 번 돈과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얼마 있으면 군대를 가야 하는 둘째 아들.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살던 집에서도 나가게 돼 집을 구하고 있지만 일자리가 비교적 많은 서울은 보증금이 비싸 할 수 없이 경기도 평택으로 내려왔다.

# 남편과 사별하고 초·중·고교생 딸 셋을 키우고 있는 여성 가장 송인숙(가명·44)씨. 자활센터에서 재봉일을 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4인 가족 최저생계비 120만원도 받고 있지만 최근 물가가 너무 올라 살림하기도 빠듯한데다가 세 아이의 학원비 등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밤 11시. 학교에서 돌아와 오랜 시간 혼자 집에 있는 막내딸이 늘 걱정이다. 돌봐 줄 사람도 없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제2의 IMF 위기’라 불릴 만큼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여성 가장들의 생활고도 가중되고 있다.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고 물가는 오르면서 이혼·사별로 인해 혼자 가족의 생계와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 가장들은 박봉으로 이어가는 궁핍한 생활 속에 구직, 육아, 주거 문제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여성 가장들의 대부분이 전문 기술이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식당 서빙, 요양보호사, 간병인, 마트 계산원 등 단순 노동직이나 일용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요즘과 같은 불경기에는 실직의 위험이 더 높다. 게다가 한 달 급여가 80만~100만원인 저임금 근로자들이 상당수.

올 상반기 한국여성노동자회의 빈곤 여성 상담자 845명 가운데 50.5%가 이혼과 사별을 겪은 여성 가장이었고 74%가 100만원 미만의 저임금 노동자였다.

초등학생 아들과 딸을 둔 김혜영(가명·45)씨는 얼마 전까지 자활센터에서 집수리 일을 하면서 80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고되고 세 식구 먹고 살기에 보수도 터무니없이 적어 결국 그만뒀다. 지금은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립직업학교에서 야간과정으로 전기 관련 일을 배우고 있다. 김씨는 “집수리보다 전기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이 비전도 있고 보수도 훨씬 낫다고 판단해 결정한 일”이라며 “당장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겠지만 내년 2월 시험을 보고 자격을 갖춰 전문 기술직으로 빨리 취업할 생각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소득층 여성 가장들의 가장 큰 경제적 고민은 자녀 양육비와 주거비. 저소득층 모자가정에 한해 만 8세 미만 자녀에게 아동양육비를 월 5만원씩 지급하고 중·고등학생에 대해 학비를 보조하는 정부 지원이 있지만 사실상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까지 10세 이하의 자녀를 둔 저소득 한 부모 여성 가장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여성단체들의 무료 돌봄 서비스가 큰 도움이 됐는데 이마저도 중단된 게 많다.

민간 차원에서 실시되던 사업이라 불경기 탓에 올해 지원이 끊겨버린 것. 이 서비스를 이용했던 한 여성 가장은 “마땅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탁아비용도 만만치 않아 직장근무 시간 동안에는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봐 주고 있다”며 “무료 돌봄 서비스와 같은 지원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집 문제도 항상 근심거리. 월세를 전전하며 집 없는 설움을 겪는 것은 예사다. 요즘은 지하 단칸방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고 뉴타운 개발로 지난해 집값이 껑충 올라 집 구하기가 더 어렵다. 한국여성재단 등 빈곤 여성 가장들에게 긴급 자금을 빌려주는 단체도 있으나 500만원 여의 대출금으로는 보증금이 비싼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임대주택에 사는 것도 그리 편치만은 않다. 김윤진(가명·31)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여섯 살짜리 아들과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0만원인 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곳에서 나가게 될 일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임대주택의 경우, 거주기간 2년 단위로 재계약할 수 있는데 계약은 단 세 번, 최장 6년까지만 거주가 가능하다. 김씨는 “6년 기한이 다 되면 다시는 임대주택에 들어올 수 없다는 얘긴데 그 기간 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전세자금을 마련할 정도로 자립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영구 임대아파트도 있지만 새로 짓지는 않고 수요자는 너무 많아 입주 순서를 기다리는 데만 2~4년이나 걸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문 직업훈련을 포함해 안정된 일자리를 위한 고용대책을 세우고 자녀 양육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또 복지관 등에서 후원금을 받거나 이혼한 전 남편 및 친정부모가 소득이 있다고 인정되면 이를 추정소득으로 간주해 필요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행 제도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한부모사업팀 김은선씨는 “현재 정부지원은 장애인과 노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싱글맘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실정”이라며 “특히 여성 가장들의 경제적 위기는 가족 해체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 최우선 지원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 부모 가정은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1.4%인 약 142만 가구에 이른다. 이 중 모자가정이 2000년 95만1866명에서 2007년 111만9667명으로 14.9% 증가했다.

싱글맘은 점점 늘고 있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여성 가장들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힘든 게 바로 사회적 편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여성 가장이라고 하면, 이혼녀라는 낙인과 함께 이혼 및 가정 파탄의 책임을 무조건 여성에게 전가하고, 심지어는 거지 취급을 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 정부 지원을 받고 싶어도 엄마가 여성 가장이라고 알려지면 아이가 학교 교사로부터 차별받거나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 때문에 많은 여성 가장들이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기를 꺼려하고 있다.

김은선씨는 “여성 가장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한 때”라며 “하지만 사회적 편견과 미흡한 제도를 개선하려면 여성 가장들 스스로가 숨지 말고 당당히 나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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