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쯤이면 ‘여풍(女風)’ 보도가 넘쳐난다. 각종 고시 합격자와 채용합격자가 발표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언론들은 “여풍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며 앞 다퉈 보도했다.

실제 여러 통계상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올해 행정고시 행정직군 합격자의 여성비율은 51.2%(124명)로 사상 처음 50%를 넘어섰고, 사법고시에서도 여성 최종 합격자는 지난해보다 28명 늘어난 382명(38%)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 6월 발표된 외무고시 역시 최종 합격자 중 여성이 23명으로 전체 65.7%를 차지했다.

여성상위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와 함께 여성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는 언론매체들은 ‘여풍’과 ‘알파걸’ 키워드 중심으로 여풍 기사를 쏟아냈다. 2003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여풍’이 ‘여성의 현저한 영향력’으로 등록될 정도로 2000년 이후 ‘여풍’은 큰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여성매체 기자로서 접하는 현실 속의 여성들은 여풍 보도와 다르게 빈곤했다.

언론매체 속의 여성들은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릴 미래지향적인 리더로서 평가받고 있었지만, 취재 현장에서 직접 만나는 여성들은 계급을 막론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이에 알파걸 열풍이 불었던 2007년, 2008년 상반기 기사와 이를 비교할 수 있는 2006년 전체 일간지 ‘여풍’ 기사를 분석한 결과, 여풍 보도는 거의 허상임이 밝혀졌다.

조사 대상인 총 50개의 기사를 분석한 결과 일간지들은 ‘단순히 여성 1호가 탄생한 경우’ ‘한 조직에서 여성들이 수적으로 증가한 경우’ ‘극소수 파워우먼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한 경우’만을 두고 ‘여풍’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일반화함으로써 여전히 여성들이 현실에서 부닥치는 것을 외면하는 ‘온정적 성차별’을 범하고 있음이 발견된 것이다. 하나같이 ‘여풍이 거세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을 뿐 내용상으로는 예전에 비해 질적으로 뭐가 달라졌는지 등에 대한 차별성과 심층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언론이 각계각층 여성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이미지를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무고시 여성 합격률은 전체의 65.7%나 되지만, 왜 외교통상부 과장급 여성은 총 4명뿐이며 국장급은 1명도 없는 현실에는 주목하지 않는가. 올해 상장기업 350개 사에서 채용한 인원 중 여성 비율이 20.1%로 나타나 5년 전에 비해서도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는가. 어디서든 여성 비율이 증가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언론매체들이 ‘여풍’이란 단어를 오용해 현실을 왜곡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남지 않은 2008년, 여풍 보도 남발로 더 씁쓸하게 저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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