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 (헌터 드로호조스카필프 지음/ 이화경 옮김/ 민음사/ 3만8000원)

유명 사진작가 스티글리츠의 ‘모델’에서 독립적인 예술가로
자신만의 꽃 그림으로 새로운 여성성 확보…모더니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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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가 620만 달러(당시 62억여 원)라는 여성 화가 최고가에 팔렸다. 그의 손을 찍은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은 2006년 소더비 경매에서 사진 경매가 최고인 147만2000달러(당시 약 15억원)를 기록했다.

미국 모더니즘 화단의 독보적인 화가로 알려진 조지아 오키프(1887~1986)는 20세기 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이면서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예술가였다. 국내에서는 더욱 그랬다. 예술가로서의 조지아 오키프의 진면목과 그를 중심으로 한 미국 모더니즘 미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책 ‘조지아 오키프 그리고 스티글리츠’의 발간이 반가운 이유다.

조지아 오키프의 이름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당대의 유명 사진가였던 앨프레드 스티글리츠에 의해서였다.

당시 주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그림을 처음 본 스티글리츠는 “드디어 회화상에 진정한 여성 화가가 나타났군”이라고 찬사를 보냈고 자신의 화랑에 그림을 걸었다. 스티글리츠의 291화랑은 아카데미 미술계가 인정하지 않았던 피카소, 마티스, 로댕의 작품을 미국에 처음 소개한 진보적인 곳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동료이자 연인으로 발전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를 모델로 한 1000여 점의 초상과 누드 사진을 남겼다. 오키프 또한 스티글리츠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없고, 원하는 곳에 갈 수 없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도 없다. 학교와 교사 화가들로부터 배운 것은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했다…결국 나는 타인은 신경 안 쓰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나의 그림을 그렸다.”

이 같은 스티글리츠와의 관계는 오키프가 유명 화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지만 동시에 그에게 있어 평생의 짐이기도 했다. 스티글리츠의 정부라는 수치의 세월을 견뎌야 했고 성녀와 창녀의 이미지 사이에서 남자들의 편견과 예술권력에 맞서야 했다. 또한 후에 스티글리츠와의 관계가 깨친 후 남은 사랑의 상처는 그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안겨줬다.

19세기 교육을 받은 남성들의 성지였던 20세기 초 미국 미술계는 여성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키프는 여성 화가들이 남성들의 지배 아래 있었던 당시 미술계에서 남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최초의 여성 화가였다.

현대미술에서 감상적이고 상투적인 여성성의 상징이었던 ‘꽃’의 이미지에서 전복의 가능성을 읽었고, 남자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겼다. 그전까지 ‘예쁘다’는 말은 비아냥거림의 상징이었으나 오키프가 그린 ‘예쁜 꽃’ 그림들은 남성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그에 대한 남성 화가들의 방해는 계속됐다.

단순화를 통해 사물이 지닌 핵심적인 아름다움을 증폭시킨 그의 작품은 194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서부터 1950년대와 1960년대의 팝아트, 미니멀리즘에 이르기까지 미국 모더니즘 양식의 결정적인 단초가 됐다.

미술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 헌터 드로호조스카필프는 이 책을 위해 10년에 걸쳐 오키프와 관련된 수천 통의 편지를 읽었고 그를 알고 있던 수십 명과의 인터뷰를 했다. 이를 통해 그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복원해냈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소설가 이화경씨는 “독자적인 예술가로 서기 위해 적대적 시선과 평단에 맞서야 했으며 어렵게 이룬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무한히 도전했던 화가. 절대고독 속에서 친구도 고향도 버리고 눈이 멀어가면서도 그림을 그리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에 매달렸던 그의 모습에서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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