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송수련

이도 부족한지 밤이면 화려하다 못해 현란한 조명들은 우주시대의 도시를 방불케 한다. 이는 자연친화적인 동양사상과 대조적으로 도전과 과장된 모습으로 우리의 생활환경 속에 위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 미술계에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20세기의 최첨단 장비인 컴퓨터 조작에 의한 합성으로 연출된 극사실적 표현들은 화려한 색상과 함께 우리의 미술계를 현혹하고 있다. 이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표현 방법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한지에 스민 한국적 정체성

서양화는 주재료인 아크릴물감으로 캔버스의 한쪽 면만을 주로 이용하지만 동양화에서의 한지는 천연적 흡입력을 바탕으로 표현기법에 있어 앞, 뒷면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채색에 있어 덧칠함으로써 배어나오는 색의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

송수련이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은 우리의 전통 문화적 양식은 뒤로한 채 물리적인 힘에 의존하고 물질 중심적 사고와 시각적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현 시대에 경종을 울리듯 우리의 사고와 정서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뒤돌아보게 한다.

동양화의 주된 표현방법은 붓에 의한 직관적 표현인 선묘에 있으나 송수련은 전통적 관념의 표현방법을 뒤로한 채 백발법과 배채를 과감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주된 표현양식과 장식효과를 뒤바꿔 표현양식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현대감각을 지닌 추상적 이미지로 느껴진다.

‘백발법’은 아교나 달걀을 잘 갠 일종의 투명 물감으로 한지 위에 바르고  마른 후에 ‘배채’ 즉 한지 안쪽에서 채색함으로써 아교나 달걀의 형상을 드러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백발법에 의한 반복과 나열의 흔적들은 한지에 스며든 담백한 색조인 먹색과 같은 단색의 청색, 갈색조의 동양적 정서를 흠뻑 머금게 하고 있다.

송수련은 ‘관조와 내적 시선’이라는 작품 명제를 가지고 꾸준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관조와 내적 시선에 담긴 일상의 미학

자연이 가진 풍성함과 풍요로운 향기만을 간직한 앙상한 가지는 지난 세월의 흔적인 양 깊은 골을 드러내며 엷은 한지는 그 위를 겹겹이 쌓고 있다.

반복과 나열이라는 중첩된 형상의 이미지는 현대적 의미를 담은 모자이크식 표현방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완성과 해체는 집약을 통해 반복되어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순리를 담고 있다.

또한 자연으로부터 받은 인상이나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삶과 함께 어우러진 손때 묻은 사물 그리고 자신의 생의 순간순간 일어나는 내적 갈등들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며 되새김질한 이야기를 무기교의 붓 터치로 무심히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송수련의 작품세계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자연의 화려한 색상과 모습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은 다시 아침의 태양과 더불어 울긋불긋한 화려한 자태를 드러낼 것입니다. 어둠의 미학은 자연의 순환과 윤회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한지에 스며든 빛의 음영들은 자유로이 소통하듯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고 또 다시 사라짐을 반복하면서 생동감과 함께 우주의 질서 흐름으로 나타난다. 이에 내재된 단색의 은은한 색조는 단순한 하나의 색이 아니라 모든 색이 함축되어 공간적인 깊이를 더해주며 어둠 속을 흐르는 빛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빛바랜 세월의 흔적들인 형상의 이미지나 자연의 생명의 끝을 고하는 식물들은 그녀의 손길 속에 새로운 흔적의 기록으로 남겨져 윤회하고 있다.

화가 송수련은

1945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동양화 전공), 성신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2006년까지 개인전 15회를 맞고 있다. 국전특선 4회, 제27회 국전 문공부 장관상, MANIF 국제전 특별상, 제15회 석주미술상 등을 통해 한국화 화단에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국내외의 많은 기획 초대전에 초대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