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는 평범한 싱글 남성일 뿐이에요"
이혼녀의 심리변화 표현한 ‘그 여자의 침대’ 등 8편 엮어
특유의 세심함으로 어긋나고 균열 보이는 남녀관계 풀어내
“무거움과 가벼움을 적절히 조화시킬 줄 알며 소설의 생기와 활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아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그의 첫 소설집이 최근 발간돼 다시 한 번 ‘박현욱’ 작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여자의 침대’(문학동네)는 2002년부터 6년간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여덟 편의 옹골찬 단편들을 묶은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의 소설은 남녀 간의 관계를 기본 구도로 하고 있다. 전작처럼 결혼에 대한 통념과 낭만적 사랑에 대해 발랄하게 문제제기 하지는 않지만, 연애와 결혼 상황에 놓인 남녀는 어긋나거나 균열을 보인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번번이 연애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한다. 사랑하지 않지만 평범하게 살기 위해 결혼하거나, 이혼 후 재혼하지만 다시 이혼 위기에 처한다.
특히 그가 가장 애착을 보이는 작품이기도 한 ‘그 여자의 침대’는 사물을 통해 이혼녀의 심리변화를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혼 후 혼자 사는 서른 살 여자는 애인이 생긴 후 함께 사용할 더블침대를 구입하지만, 불안감을 견디지 못해 다시 1인용 침대로 교환해버린다.
이처럼 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제도로서의 결혼, 낭만적 신화로서의 사랑 깨기를 시도하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의 박현욱 작가는 그저 평범한 한 싱글 남성이다.
“결혼이오? 기회 되면 당연히 하죠. 제가 그 기회를 왜 마다하겠습니까(웃음). 생각대로 삶이 전개되지 않듯이 소설의 모든 구절에 제 세계관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소설은 그 자체로 정제된 하나의 세계이지만 사람은 계속 변하니까요. 설사 제 입장이 소설에 반영됐다 한들, 제 입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게 되겠지요.”
그의 이런 결혼관은 무료한 삶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생명의 전화’의 한 구절에 잘 묻어난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를 관두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행위들이 지속되면서 여러 작품들을 낳게 됐다.
남녀 관계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것도 특별한 계기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삶의 많은 부분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소설과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쓰면 쓸수록 늘 것이고, 바다만큼 넓은 소설의 영역에 자신이 뛰어들어도 그리 누가 되지 않으리라는 두 가지 믿음으로 그는 오늘도 ‘쓰고’ 있다.
타인들의 일상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사람도 만나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또 남는 시간에는 다음 작품을 구상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는 박현욱 작가. 다음 작품에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걸출한 이야기들이 또 어떤 새롭고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될지, 독자들은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