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더 좋은 작품으로 한국 다시 찾을 것"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강수진의 줄리엣이 날아올랐다. 그녀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발레의 미학에 빠진 관객들은 한시도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17일부터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계가 사랑한 발레리나 강수진의 줄리엣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무대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한국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저는 은퇴를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무용을 그만두고 후배를 양성하는 일에 주력할 때가 오겠지요.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 춤출 때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느낌이 좋습니다.”
세계적인 무용단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수석 발레리나 강수진씨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척이나 특별한 작품이다. 1986년 동양인 최초로 최연소 나이에 이 발레단에 입단한 후 주역을 맡은 첫 작품이다. 7년 만에 이뤄낸 쾌거였다. 1994년 발레리나로 성공한 그녀가 고국무대에 첫선을 보였던 작품도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30년 전 이 작품이 초연될 당시 마르시아 하이데(전 슈투트가르트 예술감독)는 강수진에게 줄리엣 의상과 존 크랑코로부터 받은 반지를 물려주기도 했다. 그녀를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40대가 된 그녀가 표현하는 10대의 줄리엣이었지만,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그녀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느라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존 크랑코 안무로 짜인 이번 작품에서 강수진은 두 로미오 필리프 바란키비츠, 마레인 라데마케르와 무대에 올랐다.
“처음으로 줄리엣을 연기할 때보다 40대가 된 지금 10대의 줄리엣을 표현하는 것이 훨씬 신선합니다. 연기할 때마다 로미오 역도 바뀌기 때문에 그에 맞게 내 안의 줄리엣도 변화하는 것을 느끼는 것도 흥미롭고요.”
예술감독 리드 앤더슨은 “나이가 많은 발레리나일수록 어린 캐릭터의 역을 더 잘 소화해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며 “수진은 그 누구보다 사랑과 이타 감정 표현에 있어 더 풍부하고 감각 있게 해내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단 하루도 100% 살지 않은 날이 없다는 강수진, 세계 발레계의 톱 위치에 선 지금도 하루에 19시간을 연습만 한다는 강수진, 연습으로 생겨난 상처들이 짓물러 생고기를 넣고 공연한 적도 많았다는 강수진. 그녀의 마지막 줄리엣 무대는 막을 내렸지만, 한국 관객들은 은퇴 전에 발레리나로서 무대에 설 그녀를 다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반드시 무대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강수진의 줄리엣은 마지막일지 몰라도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 다른 작품으로 꼭 한국 무대에 돌아올게요. 늘 기대해주세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