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TV 드라마를 보면 아버지가 문제를 일으키는 자식에게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호통을 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방영되었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모든 딸들은 결혼을 하면서 자기의 신상정보를 아버지의 호적에서 남편이 속한 호적으로 옮겼다. 그때 분명 딸들은 호적을 ‘파갔다’.

호적이 없어진 지 10개월이 되었다. 호적의 자리를 대신한 가족관계등록부(이하 등록부)에는 이제 더 이상 한 번 기록된 내용은 파지지 않는다. 모든 개인 삶의 역사는 원래 생긴 대로 다 남게 된다.

명칭은 가족관계인데, 등록부는 사실 개인의 신상정보만을 기록하는 개인기록부에 가깝다. 모든 정보는 개인인 ‘나’를 중심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등록부는 예전의 호적제가 가지고 있던 남녀차별적인 구조들을 많이 해소했다. 동시에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은 법적 주체로서 자신의 행위에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을 결과했다.

등록부로 바뀌면서 결혼한 여성이 호적을 옮기는 것 말고 특히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부분은 부모 양자는 출산한 자녀를 각자의 이름 아래 등록하게 된 점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자녀와 마찬가지로 호주에 속한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이라는 지위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이름 아래 자녀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이전에는 좀 더 가볍게 생각되었던 자녀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3월 이후 여성부와 일부 여성단체가 조사한 등록부 제도와 관련된 민원 중 다수를 차지한 호소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이 이후 혼인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는데, 자신의 등록부에 이전에 출산한 자녀의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거부하는 호소였다. 이와 정반대의 입장도 있는데, 재혼을 하여 남편의 자녀들을 친자식같이 길렀는데 자녀의 등록부에는 친모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대신 자신의 등록부에는 아이들이 기재되지 않아 섭섭하다는 호소였다.

이런 민원들을 접하면서 자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등록부에 친모가 기재되는 것을 바랄 수도 있는데 어른들의 입장만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과 동시에, 여성의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의 견고한 편견을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겠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런 어려움들을 일부나마 해결하기 위해 등록부의 발급을 제한하고, 기재 내용을 바꾸는 법률개정안을 제출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의원들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재혼과 그로 인한 자녀들의 교차 양육에 대해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생각이다. 나아가 등록부는 이전에 아버지의 기세를 올려주던 그 호적부가 아니라, 단지 삶의 과정 중 실행한 신분상의 법률행위를 기록한 기록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정부가 할 일은 개인의 기록을 왜곡하지 않고 공시하는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도, 그 기록이 원하지 않는 경로로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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