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선시대 중국에 바쳐진 여인들
추모행사 등 공녀 역사 되찾기 작업 활발

 

지난달 31일 공녀 추모행사가 열린 서울 홍제천에서 극단 가가의회가 공녀의 아픔과 비극을 퍼포먼스를 통해 연출하고 있다.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지난달 31일 공녀 추모행사가 열린 서울 홍제천에서 극단 가가의회가 공녀의 아픔과 비극을 퍼포먼스를 통해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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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화유산해설사회
“드디어 국경 밖으로 보내게 되면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엎어져 길을 가로막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통곡한다. 그 중에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우물에 엎어져 죽는 자가 있는가 하면, 목을 매 죽는 자도 있다. 또 기가 막혀 기절하는 자도 있고 피눈물을 쏟고 실명하는 자도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이곡 ‘고려사’ 열전22 중).”

고려와 조선시대 때 중국으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당한 ‘공녀(貢女)’들의 잊혀진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이 최근 들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작업은 2004년 서울시 여성 유적지 지도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정순왕후, 경순공주, 경혜공주 등의 역사 속 다양한 여성 인물들을 발굴해 온 ‘여성문화유산해설사회’의  주축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들은 올해 공녀와 관련된 역사 찾기를 주요 사업으로 잡고 지난달 공녀 추모행사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유적지는 ‘독립공원 내 영은문(1536년 건립) 터’와 ‘홍제천’이다. 홍제천의 어원이 된 조선시대 ‘홍제원’은 중국 사신들이 서울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묵었던 공관으로, 영은문과 함께 공녀들이 끌려갔던 곳이다. 

전쟁으로 인한 여성 희생의 역사를 대표하는 공녀들은 고려시대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중국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황제와 황후 등의 수족 노릇을 감수하며 살았고, 귀족의 처·첩으로 성적 노리개 구실도 해야만 했다.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에서도 조선에 대해 계속적으로 공녀를 요구했고, 조정에서는 중국과의 사대관계상 공녀를 계속 보내야만 했다. 

공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온 정구선 역사학자는 중국에서 지속적으로 공녀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 “부녀자 강탈을 통해 고려인들의 저항을 무력화하고, 공녀를 통해 외교적으로 탄압을 가한 것”이라며 “원나라의 부족한 궁녀의 보충을 위해 당시 미모와 총명을 겸비한 고려의 처녀들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끌려간 여인들 대부분은 돌아올 수 없었고, 많은 돈을 주고 겨우 돌아온 여인들은 ‘환향녀’로 불렸다. 하지만 이들은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고향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고, 양반가정에서는 이혼을 요구 당했다. 인조(仁祖)는 홍제천에서 목욕재개하고 몸과 마음을 씻으면 행적을 묻어버리고 정조문제를 거론하는 자는 엄단하라는 영을 내렸지만, 현실에서는 소용없었다. 전쟁의 피해자였던 공녀들은 고향에서도 버림받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최선경 여성문화유산해설사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여성의 가슴 아픈 역사는 일본군 위안부로 이어지면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비록 어두운 역사지만 우리가 그녀들을 기억한다면 한은 흥이 되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독립공원 내 건립을 앞두고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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