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치참여 확대 "결국은 제도다"

독일은 1980년대까지 연방의회 여성정치 대표성이 한국의 최근 상황처럼 10%를 넘지 못했다.

1918년 여성이 처음으로 선거권을 갖게 된 후 치러진 첫 연방선거와 비교해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수치니 근 60년간 독일의 여성정치참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1990년대부터 여성의 정치참여가 큰 폭으로 상승해 현재 32.8%의 여성이 연방의회를 대표하고 있는데,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일등 공신이 바로 ‘정당’, 그리고 그러한 정당의 움직임을 만들어낸 ‘여성’들이다.

‘할당제’ 도입한 당에 표 집중

여성운동의 전성기를 맞은 1970년대 말, 남성 중심적인 제도권 내 여성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여성운동가들은 전략적으로 정당활동을 선택, 직접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자는 ‘간섭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핵심 과제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정당 내 자발적 할당제’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1980년대 중반 독일에서 처음으로 할당제를 실시한 녹색당을 시작으로, 독일의 대규모 정당인 사민당과 기민·기사당 연합(기민련)이 할당제를 채택한 1988년, 1998년 이후 여성의 대표성은 30% 수준을 넘어섰다.

독일의 정당들이 할당제를 채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정당의 선거 경쟁 때문이다.

할당제가 유권자의 표와 연계된다는 사실이 당 내부 여성조직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할당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던 주요 정당에 위협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녹색당(좌익 성향의 소규모 정당)→사민당(좌익 성향의 대규모 정당)→기민당(우익 성향의 대규모 정당)으로 이어진 할당제 전이 현상은 할당제 도입으로 많은 여성 유권자에게 환영을 받은 녹색당 지지자 중 다수가 사민당의 여성 지지자였다는 데서 시작됐다.

‘정당’ 여성정치 세력화 창구

결과적으로 1983년, 1987년 선거에서 사민당은 연이어 여성 유권자의 표를 녹색당에 빼앗겼고, 결국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사민당, 그리고 기민련은 할당제를 채택하게 된다.

정당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독일에서 ‘정당’은 정치영역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고 여성정치 세력화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과 비교해 한국은 정당정치가 여전히 미흡한 상태에서 법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러한 법을 현실에서 적용·실천하고 있는 주체가 또한 ‘정당’이기에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있어서 정당의 역할을 가벼이 볼 수만은 없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자발적으로 여성할당제를 실시했던 민주노동당의 움직임이 큰 파장을 불러오진 못했으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정당 내 여성들의 움직임과 표를 쥔 여성 유권자의 힘이 모인다면 한국 정당들의 할당제 전이현상도 기대볼 수 있지 않을까.

목소영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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