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대만의 12명 차인의 삶과 철학 담아

 

‘끽다거’(喫茶去)라는 말이 있다. 1200년 전 당나라 시대 선승인 조주선사가 도를 묻는 스님에게 ‘차나 한 잔 드시게’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 선어(禪語)다. 중국 선종 사찰에서는 지금도 매일 세 번의 차를 마시는 의식이 이어지고 있다.

차를 마시는 것은 찻물의 맛을 보기 위함뿐만 아니라 차를 끓이고 차를 나누며 환담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차인의 마음가짐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차의 정신과 사상을 계승하고 있는 이들을 소개하는 ‘세계의 차인(茶人)’이 최근 발간됐다. 월간 ‘차의 세계’의 발행인인 저자는 동아시아 4개국 12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과 철학, 차의 정신을 담아냈다. 이를 통해 우리 시대 차인들의 면모를 복원하고 있다.

차가 사람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약 5000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신농씨가 차를 발견했다는 이도 있고 서한 말 차를 끓여 마시기 시작한 왕포를 차의 시조로 받들기도 하고, 혹은 서한 시대 농부 오리진을 다선(茶仙)으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차가 전해진 것은 신라시대 대렴이 중국에서 차 씨를 가져와 퍼뜨리면서부터.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차는 일본의 다도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렇게 시작한 차와 사람의 관계는 수천 년간 진화를 거듭해왔다.

“차는 나이도 국경도 없습니다. 문화의 중심이지요. 다도는 종합문화의 극치입니다. 차를 담가 마시는 각종 도자기, 차에 곁들인 다식과 다화, 복식, 다식을 장식하는 그림, 꽃꽂이 등이 하나로 어울립니다. 오늘날 정치도 차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다도를 문화로 설명하는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은 한국만의 다도문화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 왔다. 그가 차를 하게 된 것은 어머니 고 김미희 선생의 영향 때문.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 갔을 때 “한국에도 다도가 있느냐”고 묻는 일본인에게 자극을 받아 한국의 다도 찾기에 나섰다. 딸인 김 이사장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1995년 어머니의 아호를 딴 명원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차의 세계를 예의 경지로 승화시켜 왔다. 뿐만 아니라 국민대와 함께 전통 차문화 학위과정을 신설, 차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길을 열기도 했다.

초의선사의 맥을 이은 백양사의 전 방장 서옹 스님은 ‘차나 한 잔 드시게’에서 이어진 ‘선다일미’(禪茶一味)의 정신을 한국에서 계승해온 인물이다. 서옹 선사가 그를 찾아온 일본 NHK 기자에게 “차를 돌려 마시면서 허구에 가득 찬 인사치레를 하는 일본식 다도는 우리에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차별 없는 참사람 운동을 우리 차문화계의 방향으로 제시했던 서옹 스님과의 담화는 2003년 열반에 들어 그가 없는 지금 더욱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현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을 비롯해 중국의 일성 스님과 정혜 스님, 대만의 성운 스님 등 세계의 고승들, 그리고 일본의 차박물관 노무라 미술관의 다니아키라 학예부장과 일본 다도의 명문 오모테센케 유파를 이끌고 있는 히사다쇼야 등 각국 차의 고수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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