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학생 성비 불균형, 사제 간 관계 맺음의 어려움 가져와
성비 균형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남-남 중심으로 관계 맺음

가을이 실종된 것 같은 올해, 진도 나가는 데 여유가 없더라도 다음 주쯤 대학원생들과 ‘야외수업’을 해볼 계획이다.

이번 학기 내내 여성의 역사적 궤적과 미래 전망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있는 내외국인 남녀 학생들과 함께, 하늘 같이 쳐다보고 크게 호흡하며 술이라도 한 잔 곁들여 보면 어떨까.   

사실 첨단 프레젠테이션 기기에 둘러싸인 강의실은 학생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에 그리 적절치 않다. 압축적 시간 사용과 효율적 소통만을 지향하는 공간에서 문제의식의 치열함은 쉽게 관계의 각박함으로 변하고, 더 나은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잔혹한 평가의 과정으로 바뀌기 쉽다.

교수와 학생, 그리고 학생들끼리 이루는 학문 공동체가 진정한 교육의 기본이 됨에도 불구하고, 너무 빠르고 경쟁적인 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흔히 그 사실을 잊는다. ‘관계’의 실종은 대학의 사제 간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교수-학생의 성비 불균형도 사제 간의 관계맺음에 어려움을 가져온다. 칼같이 엄한 교수든, 호랑이같이 꾸짖어 주시는 교수든, 형님같이 아버지같이 속내까지 돌봐주시는 교수든 지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제관계’의 모델은 대개는 남성-남성 관계이다. 따로 여성 교육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대가 아닌 한 ‘최고학부’인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은 선생, 학생 모두 대개 남성이던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역사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이다.  따로 여성 교육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대가 아닌 한 ‘최고 학부’인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은 선생, 학생 모두 대개 남성이던 한국 근대 고등교육의 역사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이다.

힘겨운 과제를 내어 주시고 무섭게 독려하지만, 때로는 숙식을 같이 하면서까지 문제가 풀릴 때까지 함께 고민하는 교수, 연구에 작은 진전이 있을 때면 모두의 수고를 축하하며 즐겁게 자리를 함께하는 교수, 때로는 토론이 과열되어 상처뿐인 폭주로 남더라도 또 다음 날이면 학생들을 지혜롭게 다독거려 갈등을 새로운 정진의 에너지로 변모시키는 교수. 정말 바람직한 모습이다.

훌륭한 대학교수는 훌륭한 사제 관계를 통해 훌륭한 지적 공동체를 꾸려가는 사람인 것이다. 여타의 배움터가 교수자-학습자 사이의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한다면, 대학은 개인들의 노력이 서로의 성취가 되고 이것이 교수-학생들로 구성된 지적 공동체의 업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교수님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열정은 교수 성별이 남성이냐 여성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학생의 성별에 따라서는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

많은 남성 교수님들이 여성 제자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토로한다. 남자 제자에게는 ‘남자들끼리니까’ 편하게 대할 수 있는데, 여자 제자는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증대하기 시작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거의 남성과 같아졌지만, 교수들은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자 교수들의 이러한 껄끄러움은 상당히 불평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여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하는 선생님들이 그들에게 개별화된 지적 자극을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깝게 지내기는 어렵다.

이것은 그들의 성취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쉽다. 건강한 사제 관계의 매개 없이 스스로 지적 공동체에 편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 교수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질문을 던진다. 이제 대학의 성비가 바뀌어서 남자가 다수인 교수가 남녀가 거의 동수인 학생을 가르치는 시대가 되었는데, 아직도 대학에서의 사제 관계는 ‘남자들끼리의’ 방식으로 맺어져야 하느냐고. 나는 사제 간 관계 맺음의 ‘코드’를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왜 학문적 성취를 축하하는 방식이 꼭 술자리여야 하며, 왜 치열한 토론은 폭음을 핑계로 해야만 이뤄지는가. 마치 푸닥거리같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뭔가 끈끈한, 편하면서도 생산적인 긴장감이 배어 있는 사제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성적인 위계질서가 사제 관계의 개방적인 소통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여학생들은 교수나 선배, 동료로부터의 원치 않는 성적 접근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지만, 사제 관계나 지적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서도 안 된다. 폭음하는 술자리가 아니라, 가을 하늘 아래 편안하고 여유로운 ‘야외 수업’이 더 요긴한 이유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