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새로운 패션용어로(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대중적인 관심을 끈 단어는 아마 ‘신상’이라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다소 엽기 도발적인 캐릭터로, 무엇보다 패션에 대한 열정과 집착을 과도하리만치 솔직하게 표현해낸 서인영의 신상(신상품)이라는 단어는 바이러스만큼 빠르고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생길 만큼 신상품에 대한 탐욕은 이제 대단한 흡인력으로 우리를 압박한다. 우리들에게 패션이 몸에 걸치는 것 이상의 존재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이제 새로울 것이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았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캐리를 필두로 ‘너희가 명품을 아느냐’의 저자 나카무라 우사기, 초절정 쇼핑과 파티광의 경지를 보여주는 패리스 힐튼 등 이 분야의 계보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나카무라 우사기의 경우는 임대 아파트의 수도와 전기까지 세금 체납으로 끊어지는 경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난한 여왕님(?)의 기상을 드높이며 샤넬 수트와 루이뷔통 등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으로 독자들에게 경악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황당하기까지 한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하나의 패션 용어로 정리된다. 패션 빅팀(fashion victim). 이 표현은 직역하면 과도하게 패션을 추구하는 패션의 희생자, 제물쯤 되겠다. 예전에는 소박하게 하이힐, 코르셋처럼 아름다움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정도로 생각했지만 몇 년 전, 같은 제목의 책이 출판되면서 이제는 매 시즌 나오는 신상품을 사기 위해 치르는 신용카드를 비롯한 모든 노력으로 결국 희생되는 상황을 말한다.

출발이야 패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겠지만 지극한 사랑도 과하면 독이 되는 법. 패션이 결국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고 열정이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이제는 좀 더 세련된 깊이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만들어내는 가장 멋진 조합이 아니라 신상품과 명품에 대한 편집증이 새로운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한 시즌 끝나면 또 다른 신상이 기다리는 패션의 세계, 새로운 것만이 만족시켜줄 수 있는 위태로운 감각의 끝이 어딘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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