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잇단 실책에 여성들 ‘안티 MB정서’로 규합
‘겁주면 그만둘 것’이란 빈약한 여성관으론 해결 못해

이명박 대통령이 일전에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와선 절대 안 된다. (이들을 수사하는 것은) 처벌보다는 앞으로 아이를 못 데리고 나오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주장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시는 시위를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본질 속에는 ‘겁을 주자’라는 취지가 숨어 있고, 한 면을 더 뜯어보면 ‘여자들은 겁을 주면 된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아줌마들을 우습게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으름장에 고개 숙일 여성들일까.

40대 여성은 최루탄 속 대학가를 오가며 독재 권력에 대해 이(齒) 갈았던 세대다. 민주주의 압살을 혐오하는 이들이다.

30대 여성은 ‘신세대’라는 별칭을 들을 만큼 합리적이지 않은 모든 관행에 맞서는 세대다.

공권력에 기댄 폭력적 권위주의에 넌더리를 내는 이들이다.

20대 여성은 국가 권력의 오판 속에 빚어진 외환위기의 뼈아픈 시련을,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온 몸으로 체감한 세대다.

10년 만에 다시 정부의 오판에 의해 촉발되고 거침없이 확산되는 경제 위기를 용납할리 없는 이들이다.

10대 여성은 지난 5월 이후 이어지고 있는 굴욕적 쇠고기 협상 반대 집회에서 ‘촛불소녀’의 상징이 돼 버린 세대다. 40대 여성의 딸들이며 아울러 사교육에 짓눌린 이들이다.

이 여성들이 화가 났다.

최근 멜라민 파동과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 수입으로 한창 먹성 좋은 아이를 둔 여성은 절망한다.

경제 파탄의 직접적 책임자를 끝까지 감싸며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경제 인식 속에 ‘마트에 가 봐야 1만원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없음’에 여성은 절망한다.

대통령이 부자 1%만을 위한 종합부동산세 완화안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내 집 마련을 위해 팬티조차 몇 천 원급에서만 고르는 여성은 절망한다.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사교육 시장 번창’이 주 목적인 교육정책 앞에서 자기 자녀를 좋은 학교, 좋은 학원 못 보낸 여성은 절망한다.

이 여성들의 절망 앞에 이명박 정권은 어떤 관점을 갖고 있을까. ‘그러다 말겠지’ ‘선거 때면 또 달라져’ 여전히 이런 인식일까. 착각 말라. 대단한 오판이다. 지금 여성들은 이념과 정서를 초월해 속속 정권에 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빠르게 ‘안티 MB 정서’로 규합되고 있다.

여성의 힘을 깎아내리지 말라. ‘수다’로 폄하되지만 그 파장만은 위력적이라 할 수 있는 여론 전파력, 각종 ‘불매운동’ 등을 통해 판판이 입증되고 있는 가공할 실천력, 각종 경제지표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실물경제 감도(感度), 무엇보다도 사회상을 통찰할 수 있는 고매한 안목인 시대정신까지 탑재한 여성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성 정치의식에 대한 선입견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시기에 불행과 조우(遭遇)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또 어느 산에 올라가 반성했다고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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