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여성정치 20년
되돌아본 여성정치 20년
  • 김은경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10.10 15:24
  • 수정 2008-10-10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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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성숙해온 ‘양성평등’ 역사
13~18대 국회 속 여성정치인 발굴기

 

17대 총선을 기점으로 여성정치가 급격하게 성장했다. 당시 여성계는 ‘총선여성연대’를 출범시키고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를 발족시켜 ‘여성 100인 국회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여성정치인 발굴에 총력을 기울였다.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cialis coupon free   cialis trial coupon
17대 총선을 기점으로 여성정치가 급격하게 성장했다. 당시 여성계는 ‘총선여성연대’를 출범시키고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를 발족시켜 ‘여성 100인 국회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여성정치인 발굴에 총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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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창간 20주년을 맞아 그간 본지에 기록된 한국 여성정치사의 주요 이슈와 사건들을 13~18대 등 6대에 걸친 의정역사 속에서 되돌아보고 앞으로 여성정치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본다.

여성정치 세력화의 여명기

13·14대 국회(1988~1996년)

13대 국회에 대해 1992년 박영숙 평민당 의원은 의원직을 마치며 “여성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국회”라고 정의했다.

박 의원은 그간 여성의 숙원이었던 가족법이 89년 12월 개정되고 그에 따라 여성들에게 불리했던 세제 등도 개정돼 남녀고용평등법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제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을 가장 큰 소득으로 꼽았다.

본지는 92년 제165호에서 이 개정법안에 대해 ‘여성운동·여성의원의 연대의 성과’라고 평가했다. 또 박 의원은 제146회 임시국회에서 여성정책을 일관성 있게 수립·집행할 수 있는 전문 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당위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2001년 여성부 신설의 초석이 됐다.

14대 국회는 지역구에 여성 출마자가 19명이 나왔으나 모두 낙선했다. 이후 94년 8월 보궐선거에서 신민당 현경자 의원이 옥중 남편 대신 출마해 당선됐다. 전국구에서는 6명이 당선됐다.

이 같은 여성의원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1994년 6월 국회에는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이는 여성정치 세력화의 촉매가 될 전담기구가 국회에 설치됨으로써 여성계의 의견이 입법 내용에 반영되고 국회와 정당의 남성 중심적인 정치문화를 지양하는 여성 의원들의 노력에 밑거름이 됐다.

여성 정치 참여의 도약기

15·16대 국회(1996~2004년)

15대 국회는 13·14대와 달리 여성 의원들의 약진이 시작됐다. 총 21명의 여성이 지역에서 출마해 13대와 14대에서 여성 후보가 전패한 기록을 깨고 당선되는 사례를 남겼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추미애 의원과 무소속(이후 신한국당) 임진출 의원이 서울 광진을과 경북 경주을에서 각각 당선됐다.

이후 98년 4월 대구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당선됐다. 전국구에서는 권영자 김영선 오양숙 김정숙이, 새정치국민회의의 정희경 신낙균 한영애 의원이, 그밖에도 이미경 의원과 자유민주연합의 주양자 의원 등이 당선했다.

16대 국회는 여성정치참여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될 만큼 15대 때보다 2배의 당선율을 기록했다.

2000년 국회에서 정당법 개정으로 여성 의원을 30% 이상 추천하는 여성공천할당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이 시기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16명으로 전체 5.86%를 차지했다. 정부정책이나 여성 약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여성정치인 배출의 활성기

17·18대 국회(2004~2012년)

17대 총선에 오면 여성 정치인들의 약진이 더욱 두드러진다. 우선 공천자부터 이전 16대 69명보다 2배 이상인 156명으로 확연히 눈에 띈다.

이 시기 많은 여성이 공천될 수 있었던 점은 당시 탄핵정국으로 인해 기존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정치인 출현에 대한 국민의 높은 희망과 비례대표 50%등 할당제 의무화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한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발탁된 여성들은 정치적 경험보다 전문성을 바탕에 둔 이들로, 이후 그들은 자신들의 전문성과 성실성으로 의정활동에 임한 결과 18대에서도 공천을 받고 정계 진출의 수명을 연장시켰던 것으로 풀이된다.

17대 들어 여성 국회의원들은 늘어난 숫자만큼 활약도 더욱 커졌다.

여성위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남성 의원 위주로 구성됐던 상임위원장직에 여성 의원이 다수 선출되는가 하면, 박근혜 의원은 박순천 의원 이후 41년 만에 두 번째 여성 당수가 되기도 했다.

여성 의원들의 의정활동 결과, 여성계의 숙원이었던 호주제 폐지 법안이 2005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한편 이듬해 3월엔 정치인 출신인 한명숙 의원이 국내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 사이 지방 등에서는 전략공천과 비례대표 홀수제 시행 등으로 여성 의원들의 진출이 크게 늘었으며 지난 대선에서는 박근혜, 한명숙, 심상정 등 여성 정치인들이 경선에 참여하는 등 ‘여성 대통령’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성숙기로 향하는 한국 여성 정치의 미래

오유석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지난 20년간 여성정치는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라섰다”며 “특히 최근 여성 정치인이나 여성 대통령 후보 등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지지가 이전보다 배타성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오 대표는 “여성 정치인들이 보다 자신들의 역할과 비전을 공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확산시켜 도약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종 도전과 갈등 상황에서 여성들이 장점이라고 내세우는 통합과 화해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할당제로 늘릴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다”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 정치인들의 단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의회 내부에서는 초당적 협력이 어려울 수 있지만 여성 관련 법들에 있어서는 의회 안에서 의제설정 단계부터 여성 의원들 간의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옥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초빙교수는 앞으로 여성정치의 숙제를 “여성이 정치에 참여해서 무엇이 좋아졌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등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제는 생물학적인 의미에서의 여성 정치인을 양적으로 증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여성의 대표성을 가진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질적 측면도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또 여성 유권자를 변화시키는 것도 여성 정치계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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