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사람들의 문화 창조 공간 꿈꿔”
소극장 ‘품’ 북카페 ‘폐다고지’, 60여 명의 쌈짓돈과 품앗이로 일궈내
“지난 4개월간 힘겨운 노동으로 만들어 온 공간을 드디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함께 만들어 온 사람들과 스스로의 노동의 힘에 놀라워했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감동을 느꼈죠. 하지만 문을 연 지 1주일 남짓 지난 지금, 앞으로 이 공간을 채우고 지켜 갈 일에 솔직히 무게감을 느낍니다.”
유미희 대표에게 오픈 소감을 묻자 기쁨과 함께 부담감이 전해져 왔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해 전문 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만든 공간은 이곳저곳 엉성하지만 그래서 더욱 편안하고 소박하다고.
70여 석의 객석이 있는 지하 1층의 소극장 ‘품’은 7년 전부터 소극장을 꿈꿔오며 지역에서 연극운동을 해온 유미희 대표의 꿈이 이뤄진 공간이다.
2층의 북카페 ‘폐다고지’는 여러 명의 운영위원들의 토론으로 운영된다. 1400여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작은 서가와 세미나실, 드러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는 마루와 ‘지원의 뜰’이라 불리는 베란다 등이 있다. 최수미 운영위원은 “울산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를 보유한 곳”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프로그램의 기획에서부터 공간의 운영과 유지를 모두 함께 해 나가고 있습니다. 회비도 따로 책정된 것 없이 능력껏 내도록 하는데 ‘1만원을 내고 1만원어치 산다는 시장의 원리보다 공간에 대한 애정을 소중히 하기 위해서죠.”(최수미)
대안 문화공간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미희 대표는 “눈물이 날 만큼, 도망가고 싶을 만큼 힘든 적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일하는 도중 다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이곳에 와서 밤늦게까지 먼지구덩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고.
이들이 대안 문화공간을 시작한 이유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 폐쇄적인 울산 지역의 문화적 환경 때문. 유 대표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문화국장 시절 노동자의 도시인 울산의 문화예술 공연장들의 높은 문턱을 절감했다.
“시설 자체가 부족한 데다가 밤낮 교대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시간상 제대로 이용하기 힘들었어요. 공연물이나 전시물 등은 대부분 서울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들인 경우가 많아 지역의 문화예술 창작 기반은 날로 열악해졌고요. 경제적 소외가 문화적 소외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문화가 바뀌어야 세상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는 13일부터 소극장 품의 첫 프로젝트인 연극아카데미가 문을 연다. 이어 경제·철학 강좌, 독립영화 상영, 인권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꿔나갈 계획이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다 모임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품과 폐다고지가 문화예술인과 관객이 소통하는 통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와 문화를 창조해내는 공간, 무엇보다 힘겨운 세상살이에 힘이 되는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유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