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감독들의 ‘아주담담’
안나 카리나, 뉴커런츠상 수상
PIFF 인기스타 ‘우에노 주리’
“영화 현장 군대문화가 여성 감독에 장벽”
올해 PIFF에서 주목받은 젊은 여성 감독 이경미, 부지영, 고태정과 상반기 최고 히트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아온 강미자 감독 등 5명이 4일 해운데 피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열린 좌담회 ‘아주담담’(亞州談談)에 참여,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이날 모인 여성 감독들은 “영화 제작 현장에서 성차별을 겪은 일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여성이 장편영화 감독으로서 데뷔하는 것은 힘든 것이 현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 스태프로 일할 때는 드러나는 성차별은 없었어요. 하지만 감독이 되고 나니 우리나라 특유의 군대문화가 남아 있는 현장에서 여성이 리더를 맡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이경미)
“하지만 영화학교나 단편영화에는 여성 감독이 많은데 왜 입봉은 힘들까 생각해보면 여성은 정치력이 부족하다거나 큰 판을 벌이기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고태정)
임순례 감독은 남성들의 현장 밖 네트워크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감독으로서 제작자나 투자자, 배우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남성들보다 네트워크가 약한 것이 사실”이라며 “술자리, 포커, 운동 등 현장 밖 모임에서 이뤄지는 일이 굉장히 많은데 여성이 여기에 진입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지영 감독은 여성 감독에 대한 편견을 버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현장 장악력이란 목소리나 체격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며 “내 경우 스태프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잘 했다고 자부한다. 남성 감독의 현장 장악력이 필요하다는 게 영화산업 전반의 남성 네트워킹으로 인한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여배우는 감독 할 수 없다는 편견 버려야”
올해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장으로 선정된 프랑스 배우 안나 카리나는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여성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는 부산영화제 첫 여성 심사위원이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첫 여성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놀라워하며 김동호 집행위원장에게 ‘브라보!’를 연발했다.
“아쉽게도 한국 영화는 볼 기회가 아직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어요. 짧은 역사지만 칸, 베니스, 베를린에 이은 세계 4번째의 영화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1960년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여자는 여자다’로 데뷔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안나 카리나는 이후 고다르 감독의 대표작에 출연하며 ‘누벨바그의 여신’으로 불렸다. 1973년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리빙 투게더’로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한 그는 이번 영화제에 35년 만의 두 번째 영화 ‘빅토리아’를 들고 왔다.
온 유럽인의 사랑을 받는 인기 여배우에서 영화감독으로의 변신은 쉽지 않았을 터. 그는 “당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영화를 연출했고 많은 사람들의 경계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제작비 조달이 어려웠고 첫 영화는 제가 직접 제작해야만 했죠. 하지만 배우가 왜 감독이 될 수 없다고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배우는 몸으로 영화 현장의 모든 과정을 겪기 때문에 더 잘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영화 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던 그는 요즘 영화시장에 대해 “물론 미국의 상업영화들이 판치고 있지만 지금도 파리 소극장에서 전 세계 작가 영화들이 많이 상영되고 있는 데서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빅토리아’를 작업할 당시 일일이 손으로 쓴 시나리오를 제작자에게 보냈다는 안나 카리나. 집시를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라는 그의 세 번째 영화를 곧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역할 이름 기억해주는 한국 관객 기뻐”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로 부산을 방문한 배우 우에노 주리는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여성 스타였다. ‘구구는 고양이다’는 예매 시작 40여초 만에 매진됐고 개막식 레드카펫 주변에는 그를 연호하는 팬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지난 4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의외로 평범한 대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누도 잇신 감독,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나타나 “태어나서 영화제 참가는 처음”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이곳에 와서 본 또래의 한국 여배우들은 화려한 드레스를 멋지게 소화하고 스타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에 비해 난 참 수수하구나 생각했죠. 그리고 여러 배우들이 팬이라고 다가와 일본어로 말을 걸어줘서 기뻤습니다.”
영화 ‘무지개 여신’과 ‘스윙 걸스’, 그리고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등으로 한국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우에노 주리. 그는 영화마다 이미지 변신이 능한 연기력 있는 배우로 꼽힌다.
“레드카펫을 걸을 때 관객들이 ‘노다메’ 혹은 ‘루카’라고 부르며 ‘아이시테루’라고 외쳐서 놀랐습니다. 역할 명이 불릴 때마다 그에 맞는 포즈를 취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죠. 이름보다도 역할을 기억해주시는 분이 많아 기뻤습니다.”
수수한 겉모습처럼 그는 스타가 아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배우를 소망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묻자 “내가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는 작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찍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밝힌 우에노 주리. 그는 이번 영화제에서 작품 홍보뿐 아니라 ‘아시아 연기자 네트워크’에도 참여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영화에도 꼭 출연하고 싶다”는 그의 모습을 한국 또는 다른 아시아 국가 영화에서 만나게 되길 기대해본다.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