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영역과 사생활의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는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이고 취미와 휴가생활에 투자하는 시간과 정열이 엄청나다. 그래서 이들은 퇴근 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림과 동시에 하던 일을 멈추고 유감없이 자리를 뜬다.
일, 노동이란 단어에 해당하는 불어 travail (트라바이)는 tripali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을 고문하던 발 세 개 달린 기구를 지칭한다. 벌써 어원에서부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몇 년 전에 보았던 ‘일 위험 조심’이란 다큐멘터리 영화가 떠오른다. 타의에 의해 이른바 ‘산업전선’에서 이탈하게 된 실업자들의 생활을 기록한 영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이 특히 이들의 좌절에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 일 없이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시간이 많은 관계로 평소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던 여가생활을 즐기게 되자 오히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는 자의적으로 차츰 일을 등지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일과 결별하는 상태에까지 이른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꼭 필요한 소비생활만 하면 인간은 얼마든지 일 없이도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을 하던 50대 남자는 어느 날 등산을 하다가 추락, 다리 하나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했다. 영원히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앞에서 모든 게 갑자기 허망하게 보였다. 결국 수십 개월에 걸치는 재교육을 통해 다시 정상인이 된 그는이제까지 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일에서 벗어나 삶을 여유 있게 즐기기로 했다. 잘 굴러가던 회사도 동업자에게 넘겨버렸다. 그러나 다달이 나오는 실업수당만으로 살아야 하니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 했다.
사업을 하던 시절에 굴렸던 큰 차를 작은 차로 바꾸고, 나중엔 작은 차마저 자전거로 대치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 인간은 얼마 되지 않는 몇 가지 물건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버는 셈이다. 돈을 벌다보니 자연히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쌓인 스트레스를 소비행위로 푸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소비를 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나온다.
프랑스에서 이러한 논리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실업수당이나 생활최저생계비용(RMI) 등 일정 수당을 정부에서 받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도 더 이상 일하지 않는 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많이 일해서 많이 벌자’라는 발언을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일의 양에 따라 수입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그 정반대의 경우가 비일비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일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