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부담 없이 만나는 ‘초청문화’ 필요
섬처럼 혼자 있는 기분 서로 달래줄 수 있어

지난 주말 우리 집에 20명의 여자를 초대했다. 성주와 상주에 사는 여성 농민들로 강연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우리는 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여악여락 콘서트’에 참여하고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막걸리에 부침개가 전부였지만 서로 살아온 삶의 애환을 나누며 여자의 인생을 이야기했다. 

모시고 살던 시부모께서 올 봄에 돌아가셔서 30년 넘는 결혼생활 만에 이번이 처음 나들이라는 사람의 말에는 눈시울을 붉히고, 며느리가 출산을 앞뒀는데 마침 어제 손자가 태어나서 올 수 있었다며 ‘효손’이라 칭찬하는 말에는 박장대소했다.

이날만을 기다리며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지런히 많을 일을 해놓고 왔노라는 말에는 ‘나도 나도’ 단박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노독에 겨워 몇몇은 잠이 들고 그래도 ‘아까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밤을 새웠다.

우리 어머니는 차린 것 없이 손님들을 청한 나의 무례함을 탓하셨지만 오신 손님들은 의미와 재미가 함께한 이 나들이가 즐겁고 행복하기 짝이 없었노라 했다.

앞으로 얼마간은 이 힘으로 고된 일에도 웃을 수 있고 떠올리기만 해도 흐뭇한 추억이 될 것이라 했다. 이렇게 만나면 좋은 것을, 만나기만 하면 힘이 나는 것을, 평생 갈 추억이 되는 것을 왜 우리 여자들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을까.

물론 일과 아이들과 시부모와 살림살이가 가로막고 있어서 쉽지 않다. 그러나 손님을 청하면 뭔가 해 먹여야 한다는 고정관념, 그것도 좀 번듯하게 차려 먹여야 한다는 강박이 여자들로 하여금 초청을 부담스러워하고 끝내 기피해버리게 만든다.

객관적 현실은 어쩔 수 없다 해도 현실은 언제나 변하는 법이니 우리 마음속의 이런 걸림돌부터 없애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여자들이 통 만나지 않고 산 건 아니다. 식당에서 만난다. 자리 비워줘야 하니 찻집으로 이동한다. 그러느라 시간이 다 흘러간다. 누구네 집에 모인다. 시켜 먹자니 믿을 만한 음식도 점점 드물어지고 특별히 먹을 만한 것도 없이 돈만 든다. 저마다 한 가지씩 만들어 오자니 그것도 차츰 부담이 된다. 집에 모이면 주인이 자주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것도 대화의 맥을 끊는다. 그러곤 밥 할 시간에 쫓겨 총총히 헤어지고 마는 것이다. 가슴 가득 뭔가 모를 아쉬움을 안은 채.

가을이 되면서 외롭다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인생의 가을을 맞는 중년 여성들은 인생 2막을 어떻게 시작해야겠느냐고 내게 상담을 청한다.

나의 답은 여성들끼리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자신의 독자적 세계 없이 가족과 집안일에 매몰되어 살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섬처럼 혼자 남아 떠돌고 있다는 느낌이 엄습해 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서 수시로 만나야 한다. 그것도 맨손으로 부담 없이 만나야 한다. 차린 거 없이 편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차 한 잔에 떡 한 조각이면 어떠랴. 먹는 데 쓰는 시간을 이야기가 깊어지는 데 쏟아야 한다.

성주에서는 참외 들고 상주에서는 사과 들고 와 서로 나누어 먹었다.

참외랑 사과랑 먹으며 우리의 인생을 이제 사랑하자고 이야기했다.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이렇게 살자 하여 즉석에서 참사랑회를 만들었다. 헤어지는데 성주의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다음에는 우리 집에서 모여요. 우리 집 밭에는 상추가 일 년 열두 달 있어요. 고기만 사서 싸 먹으면 쉬울 거 같아요.”

접대의 부담이 사라지니 초청의 싹이 이렇게 튼다. 올 가을 여성들이 서로서로 부르면서 살자. 박주산채로 여자들의 우정을 다지고 연대하면서 이제 섬이 아닌 뭍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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