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한 시아버지' 이제는 옛말

한편으로 MBC 주말연속극 ‘내 인생의 황금기’를 보면 특히 재미있는 인물이 눈에 띈다. 바로 김희경(박정수 분)의 남편이자 이황(문소리 분)의 시아버지로 나오는 유인식(임채무 분)이라는 중년 남성이다.

유인식은 여타 드라마에 나오는 다른 중년 남성 인물들과는 다른 캐릭터다. 점잖고 말수 적은 다른 중년 남성 인물들과 달리 ‘나쁜 남편’ ‘까칠 시아버지’다.

‘인자한 시아버지’는 옛말

 남성 우월주의 드러낸 ‘까칠 중년’

이 드라마가 젊은이들의 사랑과 결혼문제를 주제로 다루다 보니 이 인물의 비중은 젊은 인물들에 비해 약하고 그의 행동반경은 아직까지는 안방과 주방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시시콜콜 쏟아내는 말로 까칠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년 남성들의 까칠함의 정체도 어림할 수 있겠다.

우선 아내를 대할 때 면박 주기 일쑤다. 생각에 잠겨 있는 아내에게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뭐 하는 게 있다고 매일 머리가 아파?” “내가 카드 빼앗았다고 이러는 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당신을 미련 곰탱이라고 하는 거야” 등의 대사를 고약하게 쏟아내며 배우자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남편 우월주의를 드러낸다.

며느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가 못마땅하다. “어떻게 하는 짓이 하나부터 열까지 큰애랑 그렇게 달라?”라며 큰며느리와 비교하고 “식사할 때 상스럽게 후루룩 거린다”며 며느리 없는 데서 흉도 본다. 그러다가 “태일이 이 녀석 눈이 삔 거 아냐? 여자 보는 눈이 왜 그 모양이야?”라며 화살이 아들에게도 향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옛말도 무색하고 이전의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너그러운 시아버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며느리가 바깥일을 하는 것에 대해 특히 까칠하다. 아이에게는 엄마 손이 필요하고 며느리를 세상과 나누고 싶지 않다며 직장을 관두라고 하는 등 며느리는 집안에만 소속된 존재로, 육아는 엄마만 전담하는 문제로 강요한다.

더 나아가 “니가 당장 온 식구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도 아니고 사회적 성취도가 높은 대단한 직업도 아닌데 꼭 그렇게 직장 다녀야겠느냐”고 재차 묻는가 하면 “한번 관뒀으면 말 것이지 뭐 하러 다시 나가”라며 며느리의 재취업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등 여성의 직업과 관련한 사회적 변화에 낙후된 시각을 보인다.

“시아버지 어려운 줄도 모르고 눈 똑바로 뜨고 따박따박 지 할 말 다한다”고 며느리를 비난하고서는 그 탓을 며느리 친정으로 돌리기도 한다. “이래서 환경이 중요한 거야. 지 아버진 재혼해 새 마누라한테 정신없었을 거고 새 엄마 밑에서 배다른 형제끼리 살았으니 대체 뭘 보고 배웠겠어? 그러니까 결혼을 하기 전에 혼전 임신이나 하고 말이야”라며 재혼 가정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함께 아들과 같이 한 혼전 임신을 며느리만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드러낸다.

변화하는 사회와 가족관계 속

다양한 ‘아버지’ 캐릭터 발굴해야

이러한 남편, 시아버지에 대해 아내와 며느리가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다.

“몸에 사리 한 말씩 만들어가며” 참고 살아왔다는 아내는 일단은 참는다. 며느리가 후루룩 소리 내며 먹는다고 상스럽다는 남편에게 “그래도 당신 짭짭거리는 소리보단 낫습니다”라며 속으로 반격하는가 하면 엄마 편을 드는 딸에게 “냅둬. 아버지는 나 흉보는 낙으로 사시는 분이니까”라며 몇십 년 참아온 속내를 드러내며 남편의 부당함을 지적한다.

이에 반해 며느리는 적극적이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신, 육아에 대한 부모의 균형 잡힌 관심의 필요성, 자신만의 시집살이 방식 등을 밝힌다. 시부모에게 자신의 태도가 얄밉게 보일까봐 식사 준비를 잘 하는가 하면 별도로 사후 설득의 말도 덧붙인다. 학교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자 방송국 PD인 킹카 시댁 친척과 내세울 것 없다고 여기는 자신의 여동생과의 결혼 과정에서 보인 시아버지의 까칠한 속물 근성으로 받은 스트레스도 질질 끌지 않고 털어버린다.

결국 아직까지는 중년 남성 캐릭터의 까칠함이 즉시로 소화가 되어 큰 파장을 몰고 오지는 못하는 셈이다. 드라마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전개되 가족관계에 대해서, 사회적 변화와 편견에 대해서 이 까칠한 캐릭터가 어떻게 작용할지 지켜볼 만하겠다. 이 드라마의 작가의 전작인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시아버지(박인환 분)가 금순의 재혼으로 인한 손자의 성씨 변경과 관련하여 며느리와 까칠하게 갈등하고 해결하던 과정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다양해진 중년 남성 인물들의 면면이 드라마 보는 재미와 현실성을 더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계 역시 있다. 아직 많은 드라마에서 중년 세대가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가치와 변화를 상징하는 사랑과 결혼을 방해하는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년 남성과 중년 여성은 각각의 획일화된 정체성과 역할에 머물러 있다. 현실에 맞는 다양한 중년의 역할과 캐릭터 발굴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