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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거….”

서울 손님들이 이제 가야겠다고 일어서면서 앙증맞게 작고 예쁜 봉투를 내민다.

“에고, 뭐야?”

“이거 립스틱인데…. 선생님, 요새 화장 안 하시는 건 아는데….”

“가끔은 해. 뭐든지 주기만 해! 호호호….”

그런데 준 사람이 염려한 대로 내가 립스틱 바를 일이 있겠나. 그래도 마음이 고맙고 기뻤다. 손님들 떠나가고 선물은 딱히 소용되는 물건이 아닌지라 펴보지도 않은 채, 경대 앞 한구석에 놓고는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추석 앞두고 방방이 대청소를 하다가 그 앙증맞은 선물 봉투가 눈에 띄었다.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할까?”

봉투를 여니 쪽지가 한 장 들어 있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하시는 선생님의 화려한 외출에 조금이나마 한 몫 하고 싶은 생각에 준비했어요. 건강하세요.”

여기서 ‘화려한 외출’이라 함은 일 년에 한두 번 ‘바비킴 콘서트’ 같은 풀각시의 특별한 나들이를 말함이리라. 나비 팔랑이는 예쁜 포장지를 뜯으니 진달래 빛 립스틱.

“어? 이건 스틱이 아니라 붓이 달렸네. 요샌 이렇게 나오나?”

화려한 외출이라? 갑자기 마음이 동한다. 옷장 문을 열고 몇 년째 비닐도 벗기지 않은 채 걸려 있는 옷들을 훑어본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아꼈던 비즈 장식이 있는 검은색 실크 투피스. 꽤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음, 검정 드레스에 어울리는 빨간 핸드백. 요놈도 내가 애용하던 것. 빨간 핸드백과 맞춘 빨간 구두. 이건 예쁘긴 하지만 걷도록 만든 신발은 분명 아니었다. 굽이 높아 발이 무지 아팠다. 특별한 행사 있는 날에만 신었다는…. 아, 액세서리. 난 큼지막한 귀고리가 참 좋더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외출을 한다.

“어디 가니?”

“응, 나갔다 올게요.”

그림 같은 카페에 앉아 아름다운 예당저수지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생각이 과거로 돌아가니 5년 전까지 나의 삶을 이루었던 서울생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왜 그렇게 목숨 걸었었지?”

웃음이 난다.

“그래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 건 잘한 일이야. 후회는 없다.”

그때도 행복했고 지금은 더 행복하니까. 그나저나 이 커피 너무 비싸다. 한 잔에 오천 원. 아까비…. 그런데 이게 웬 일? 먼데서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이 오더니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진다.

“에궁, 큰일 났다. 고추랑 호두 널어놓았는데.”

굽 높은 구두 때문에 뛰지도 못하겠다. 에구, 발목 부러지겠다. 먼 길 떠날 듯이 차려입고 나간 딸이 30분도 안 돼 돌아오자 엄마가 놀란다.

“우째 금방 오냐?”

“응, 안 가도 되게 됐어.”

집에 도착하니 마치 하늘이 풀각시를 놀린 듯이 날은 쨍 개고 만다.

“에고, 다행이다.”

구두는 벗어서 상자에 담아 깊이 넣어두고 실크 투피스는 옷걸이에 걸어 다시 비닐을 씌운다. 비는 좀 와야 하는데. 오늘도 비 안 오면 배추밭에 물 대야 한다. 멋진 풀각시 패션으로 갈아입고 배추밭으로 나간다.

“아, 편안하다.”

그 옛날 후배들이 직장문제로 상담할 때면 내가 항상 했던 말.

“돈? 명예?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네 마음이 편안한 곳에 있어라.”

난 지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한 흙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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