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KBS 드라마 ‘너는 내 운명’
캔디 재생산 여전… 입양 신가족 좌절 아쉬워
또 일일드라마는 여러 세대의 사람들과 다양한 가족이 등장하기에 가족 세대원 모두가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점도 한 몫 하는 인기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일일드라마의 이런 일상과 세대의 이야기는 요즘의 가족 구성에 맞지 않고 또 보수적인 시선을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결혼하여 단독세대를 이루는 것이 요즘 추세지만 드라마에서는 모두 같이 살고 가족 간 특히 고부갈등도 일상적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요즘 인기 있는 KBS1 TV의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은 과연 어떨까.
아직도 드라마 여주인공은 ‘캔디’
삼각관계, 사고 등 고난의 연속
언제부터인가 TV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만화주인공 ‘캔디’를 닮아 있다. 만화 ‘캔디’는 방영 당시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강산이 두 번 이상 변하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아직도 캐릭터로서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라고 말하는 캔디는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주인공 장새벽(윤아)과 너무도 닮아 있다.
최근 드라마 중에 가장 전형적인 캔디 캐릭터인 새벽은 앞을 못 보는 장애를 가진 고아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고로 죽은 여성의 안구를 이식받고 생활하며 지금의 대진(장용)과 영숙(정애리) 부부 가정에 성인임에도 입양되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극적인 삶을 살던 그에게는 입양 후에도 계속 캔디로 살게 만드는 인물과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그가 사랑하게 된 호세(박재정)와 새벽이 입양된 가정의 사촌언니 수빈과의 삼각관계인 것. 수빈은 호세의 약혼자였지만 새벽으로 인해 파혼하게 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더욱이 그에게 안구를 기증한 나영은 현재 입양된 집의 고인이 된 딸. 그의 사고가 새벽과 연관되어 있음이 알려지면서 자칫 파양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 갈등의 절정을 이룬다.
최근에는 이렇게 대단히 고단한 삶을 사는 새벽이 입양된 집에서 어릴 적 잃어버린 딸이라는 큰 반전이 예고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가족 간의 갈등도 해피엔딩을 맞으며 끝날 것이다.
주인공 관련된 교통사고 묘사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드러내
여주인공에게 시련을 주고 그것을 꿋꿋이 이겨내며 사랑과 성공을 쟁취하는 여성은 요즘 드라마에서 새로울 것도 없고 신선하지도 않다. 여기에 드라마는 갈등의 최고조를 이루는 나영의 죽음과 관련된 전개에서 대단히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애가 있던 새벽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 옆의 애인과 장난을 치던 나영이 미처 그를 보지 못해 사고를 낸 탓에 죽음을 맞게 된 것. 같이 있다 다친 나영의 남자친구는 새벽을 알아보고 그에게 ‘미필적 고의’라는 어처구니없는 혐의를 둔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사는 상대가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게 된 행동을 말한다. 따라서 이를 새벽에게 적용하면 누군가 자신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음을 알지만 길을 건넜다는 말이 된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의 잘못보다는 앞을 못 보는 새벽에게 사건의 책임을 전적으로 넘기는 이런 내용은 방송에서는, 특히 공영방송 KBS에서는 절대 안 되는 내용이다. 마치 ‘너는 장애인인 것만으로도 죄인인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나 같은 차별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으로 인해 수많은 시청자 항의가 있었고 최근 그 남자가 새벽의 탓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이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무책임한 내용 전개로 인해 결국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보탠 역할을 했다. 아직도 세상은 이들에게 냉담함을 일깨워주기만 한 것이다. 사실 그날의 사고는 그들이 새벽에게 생명의 위협을 주었던 상황인데도 말이다.
극단적 전개와 비상식적 캐릭터
입양가족의 새로운 탄생 아쉬워
드라마 내용 때문에 새벽에게 측은함을 가진 시청자들이 ‘여주인공 괴롭히기’ 드라마라고 비판을 퍼붓고 있는 ‘너는 내 운명’. 여주인공의 연적인 사촌언니 수빈과 그 엄마의 악녀 연기, 그리고 내용에서의 비상식적 전개까지 겹치면서 요즘의 어떤 드라마보다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이제 캐릭터와 내용의 극단성, 몇몇 여성 캐릭터의 비상식적인 표현은 그만 해줬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시청률을 위해 보이는 극단적인 내용 전개들이 사회의 차별을 없애는 미래지향적 내용과 맞지 않을 때 과연 어떤 가치를 갖는지 궁금해진다.
새벽이 성인임에도 친딸을 품 듯 입양한 대진·영숙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이 이런 내용 전개들로 의미 없이 되어버리고 더욱이 그가 친딸임을 예고하는 내용들도 입양의 결단에 빛을 바라게 한다. 입양가족으로서 신가족의 탄생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