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톤먼트

그러나 포장이 다소 엇나간 부분도 있으니,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비극적 사랑 영화란 것이다. 이는 상업성을 고려한 요약인데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핵심은 아니다.

‘어톤먼트’는 소설의 파괴력과 치유력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며, 상상력 풍부한 당돌한 소녀가 원숙한 소설가로 성장해가는 이야기이다. 이는 서플먼트의 해설 등을 통해 자주 강조된다. 액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성장의 큰 틀 안에 4개의 장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 장은 배경과 분위기가 다르며 현실과 상상, 시공이 얽혀 주의력 결핍 관객은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할 정도다.

첫 장은 숲으로 둘러싸인 1935년 여름의 탈리스 저택이 무대다. 가정부의 아들 로비(제임스 맥어보이)는 주인댁 딸인 아름다운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러나 젊고 오만한 두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지 못해 사소한 오해를 거듭하며, 혼란스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마침내 이들이 첫 관계를 맺는 순간, 이를 목격한 세실리아의 여동생 브라이오니(사오리스 로난)의 잘못된 증언으로 이제 막 사랑을 확인한 로비와 세실리아는 헤어지게 된다.

둘째 장에선 군에 강제 징집된 로비가 던커크 후송 작전의 혼돈 속에서 “내게 돌아와”라는 세실리아의 애절한 편지 목소리를 떠올린다. 셋째 장은 간호사를 자원한 브라이오니가 자신의 오해와 잘못된 증언으로 헤어지게 된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속죄하려는 노력, 너무 늦었다고 비난하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갈등에 할애된다. 마지막 장은 유명 작가가 된 노년의 브라이오니(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자전 소설 ‘속죄 Atonement’의 비밀을 밝히는 에필로그다.

‘어톤먼트’는 각 장의 촬영방식을 달리하는 한편,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이 이야기가 13세, 18세, 77세로 성장해온 작가 브라이오니의 머리와 가슴과 손에서 탄생한 것임을 밝힌다. “독자들이 희망을 볼 수 없어서, 내 마지막 친절로 행복을 선사했다”는 브라이오니의 처연하면서도 결의에 찬 마지막 고백은 소설과 소설가의 역할, 더 나아가 창작과 창작자, 즉 신과 그 피조물에 대한 사색을 요구한다.

감독 조 라이트가 서플먼트를 통해 ‘어톤먼트’를 “잔인한 영화”라고 정의한 것은 그래서 공감이 간다. “불안정하고 창조적인 힘을 가진 거짓말쟁이 소녀의 인생 여정을 그녀의 시점에서, 그녀의 감독 하에, 그녀가 만든 이야기를 통해 그렸다. 소녀는 성장하여 이야기하기의 본질과 이유, 그 힘과 영향력을 밝힌다”고 인터뷰한다.

감독 조 라이트/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제임스 맥어보이/ 제작연도 2007년/ 상영시간 123분/ 등급 15세 관람가/ 출시사 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