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만 따면 방과 후 교사로 취직?
교육부 "채용 계획 없다" 피해 불보듯

최근 ‘성교육 상담사’라는 민간 자격증이 여성 구직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잇단 청소년 성범죄 사건으로 성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고, 요즘처럼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에 여성이라는 강점을 살려 도전해볼 만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오는 12월 14일 첫 시험이 치러지는데, 상담전화가 제때 연결이 안 될 정도로 관심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상담 내용의 상당수가 허위사실로 드러났다. 교재 집필자로 유명인의 이름을 거론했지만 사실과 달랐고, 자격증만 따면 초·중·고등학교에 방과 후 교사로 취직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확인 결과 교육부는 채용 계획이 없었다.

지난 8일 모 일간신문에 ‘성교육 상담사를 취득하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자격증만 따면 성교육센터나 성상담소를 개업할 수 있고, 교육기관이나 단체, 복지센터 등에 취업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광고에 적힌 번호로 상담을 해봤다.

“필기시험을 봐야 하던데 교재가 따로 있나요?” “물론 있습니다. 시험 직전에는 예상문제까지 보내드립니다. 필기·실시 응시료 12만원을 포함해 75만원만 부담하시면 됩니다.” “교재는 누가 만들었죠?” “유명한 24명의 교수들이 출제했습니다. 잘 아시는 강지원 변호사도 포함돼 있습니다.” “취업까지 연결해주나요?” “네, 자격증만 따시면 초·중·고등학교에 방과 후 성교육 교사로 취직시켜 드립니다.”

하지만 확인 결과 강지원 변호사는 성교육 상담사에 관한 교재를 집필한 사실이 없었다.

성교육 전담부처인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도 “학교 성교육은 보건·양호교사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성교육 강사를 방과 후 교사로 별도 채용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교육 상담사 자격제도를 주관하는 한국자격개발원의 유인석 사무국장은 “개발원은 자격시험만 관리하고, 나머지 신문광고나 교재 판매는 우리 교육원이 지정한 드림교육원에서 맡고 있다”며 “교재를 팔 요량으로 거짓말을 한 것 같은데 사실 확인 후 시정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자격증 시험교재 판매업체인 드림교육원은 지난 2006년 4월 한국자격개발원이 주관하는 노인복지사 자격시험 교재를 광고하면서 취업이 보장되는 국가인증자격증인 것처럼 허위광고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성교육 상담사는 민간자격증이다. 현행 자격기본법에 따르면 누구나 민간자격증을 발급해줄 수 있다. 지난 5월 법이 개정돼 민간자격증이라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등록하고 검증을 받도록 했지만, 등록하지 않아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유인석 사무국장은 “자격증 장사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불미스러운 일도 없진 않다. 하지만 민간자격증이라도 얼마나 원칙대로 실시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위신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개발원이 제시한 필기시험 교과목은 총 5가지다. ▲남녀 생식기 이해와 피임법, 성병 예방법을 다룬 ‘성보건학’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성문화 역사를 다룬 ‘성윤리학’ ▲다양한 성교육 방법과 종류를 살펴보는 ‘성교육학’ ▲전화상담, 개인면담, 집단상담 등 상담기술을 배우는 ‘성상담론’ ▲관련 법률을 다룬 ‘성과 법률’ 등이다.

시험교재는 시중 서점에는 없고, 드림교육원처럼 개발원이 지정한 곳을 통해야만 구입할 수 있다. 교재 내용을 더 알고 싶으니 필자들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유 사무국장은 “주로 관련분야 교수거나 현장 전문가다. 시험 출제자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성폭력·성교육 상담가 양성교육을 오랫동안 해온 단체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성인지적 관점이 배제된 성교육이 확대 재생산될 경우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폭력 전문 상담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여진 간사는 “성교육 상담사 광고가 나올 때마다 상담소에 문의전화가 빗발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그동안 여성단체들이 꾸준히 문제제기해 온 보호 중심적이고 청소년을 대상화하는 내용의 과거 성교육 커리큘럼을 그대로 옮겨놨더라”면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상담사를 장사 수단으로 악용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올해로 8년째 성상담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는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센터장은 “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는 것”이라며 “문제를 누가 출제하는지 알 수 없고, 별도의 교육과정도 없이 시험만 통과하면 자격을 주면 질적 관리에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