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논란 불구 민족화해 조성 공헌도 높아
통일부·한나라 중진의원들, 지원 재개 한목소리

요즘 우리 정부가 대북지원 재개를 놓고 무척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는 듯하다. 지난 9월 초 세계식량계획(WFP)이 긴급 대북식량 지원에 나서면서 우리 정부에 최대 6000만 달러 상당의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WFP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사정이 기아(famine) 상태는 아니나 기아 상태가 될 위험이 있으며, 기아상태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5억 달러 상당의 식량을 북한에 긴급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올해 특별히 더 어렵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미 지난 봄부터 ‘제2의 고난의 행군’에 대한 우려가 학계와 대북지원 NGO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었으며, 대북지원 단체인 ‘좋은 벗들’의 법륜 스님은 인도적 지원의 재개를 호소하는 단식을 결행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선뜻 대북지원에 나설 수 없는 고충도 십분 헤아려진다. 새 정부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북한 당국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에 대한 우리 측의 진상규명 요구조차 응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중단함으로써 다시금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지난 5월 어렵게 제의한 옥수수 5만 톤의 지원을 거부당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바도 있다. 따라서 현재 정부는 지원의 가능성은 열어둔 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다소 어정쩡한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현 상황이 1990년대 중반 이래 최대의 식량위기라는 WFP의 현장조사 결과와 국내 NGO의 줄기찬 지원 요구를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한나라당의 중진의원들조차 7개월이나 중단된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일환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청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1995년 8월 전례 없는 홍수 피해를 본 북한이 국제사회에 긴급구호를 요청하면서 시작된 대북지원은 그간 지원의 효율성과 분배 과정에 대한 투명성 문제를 놓고 소위 ‘퍼주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3년간의 지원경험을 돌이켜볼 때, 대북지원은 비록 여러 가지 아쉬운 제약을 남겨두고 있지만 반목과 대립으로 얼룩진 분단사에 보기 드문 민족 화해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04년 4월 룡천역 폭발사고 이후 우리 사회의 인도적 대북지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하였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가장 먼저 신속한 대북지원을 촉구하였으며, 정치권은 남북협력기금의 사용에 최대한 협력한 바 있다.

통일부 당국자들을 만나보면 모두가 한목소리로 인도적 대북지원과 금강산 사건을 별개로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시기와 규모는 차치하고라도 일단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 다수다. 그러나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죽다가 살아난 통일부는 앞장서서 이러한 주장을 펴기 어렵다. 더 높은 곳의 의중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지 않을까? 

향후 남북관계를 대비한 포석, 순수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 국제사회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사실 해답은 자명하다. 지원의 효과 면에서 보더라도 가을 추수 직전이 북한의 식량 사정에 최악의 시기라는 점에서 신속한 결정이 필요하다. 고위층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