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 강요 전에 20대 여성의 가치 인정해야
애국심 강요 전에 20대 여성의 가치 인정해야
  • 김은실 / 이화여대 여성학 교수
  • 승인 2008.09.05 11:20
  • 수정 2008-09-05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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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조사 “불행하지 않지만 한국 떠나고 싶어” 답해
책임 있는 자리와 가치 인정받을 때 공동체의식 싹틀 것
여성이 국가와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나는 최근 촛불집회에 여성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국민이다’라고 외치는 것을 아주 흥미롭게 봤다.

여성들이 광장에서 국민임을 주장하는 이 장면은 한국 여성주의 역사에서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국면이다. 이들이 ‘나는 국민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이전까지는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던 다양한 여성 집단들에 대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징후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징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건은 지난 8월 15일 모 방송사에서 한국인들의 국가관과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의식조사 결과다. 방송사에서는 20대 여성들의 국가관이 소위 가장 ‘문제’였다고 보았다. 이들은 대부분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고 답했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금을 모은다거나 전쟁에 참여하는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보였으며, 이혼이나 외국인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그렇다고 이들이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서 불행하다고 답변하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자료를 본 데스크는 ‘불행하지도 않은데 왜 20대 여성들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가’라고 궁금해했다. 여성들의 국가관에 대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이 데스크의 궁금증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여성들의 국가관은 그들을 대변하는 남성들, 즉 아버지나 남편 혹은 아들의 국가관에 종속되어 있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성들이 공적 영역에서 독립적인 일을 하기 시작할 때 그들의 국가관 혹은 세계관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애국심이나 국가관을 요구하기 이전에 여기 살고 있는 20대 여성들이 자기 정체성을 어디에 준거시키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어차피 집을 떠나 결혼을 하거나 독립을 꿈꿔야 하는 20대 여성들에게 이동은 불가피하다. 또한 이동이 강조되는 지구화 시대에서 국내에서 전망이 없을 때 이동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거나  삶의 양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로 인식된다.

2001년 ‘고양이를 부탁해’에 나오는 20대 주인공들은 ‘저부가가치’ 인생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배를 탄다. ‘고부가가치’의 여성의 로망도 이동이라는 차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사회에 익숙하고 유능한 고부가가치 여성들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거나, 국제기구에 가거나, 최소한 해외출장 등이 잦은 업무를 꿈꾼다.

지금 현재 한국의 20대 여성들은 돈이 곧 성공의 척도이고, 시장에서의 인정이 곧 보상이 되는 사회에서 자라난 세대들이다. 이들의 자아정체감 혹은 자기 노력에 대한 보상은 시장과의 관계를 통해 획득된다. 그들은 이런 의미에서 국가나 민족보다 시장이 더 중요하다.

얼마 전 30대 초반의 성공한 커리어 우먼인 J는 20대 여성들은 어학, 학점, 외모 등 뛰어난 자기관리를 하고 회사에 들어오지만 이들에게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조직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종합적 이해와 문제해결 능력은 그 회사에 자기 소속감이 생기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요구될 때 생긴다.

우리 사회가 20대 여성들의 의식을 여기에 붙잡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성들의 애국심과 국가관을 의심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책임 있는 자리를 주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들의 능력에 대해 보상을 해줘야 한다. 그럴 때 20대 여성은 이 사회의 책임을 기꺼이 나누어 가지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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