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 위해 건강권 포기한 지하철역 미화원
재계약 위해 건강권 포기한 지하철역 미화원
  • 이은경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8.29 10:54
  • 수정 2008-08-29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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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사로 팔 잘려도 감출 수밖에 없는 게 운명이죠”

 

김씨의 오른팔은 외관상 몸통에 붙어 있긴 하지만 사실상 감전사로 절단돼 팔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cialis coupon cialis coupon cialis coupon
김씨의 오른팔은 외관상 몸통에 붙어 있긴 하지만 사실상 감전사로 절단돼 팔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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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김미자씨가 지하철역 철로를 고압 청소기로 청소하던 중 감전사를 당한 것은 2007년 5월 24일 새벽 3시 40분쯤이었다. 내부에 전기선과 구리, 물이 들어 있어 상당히 무거운 50m 길이의 호스를 들고 한창 작업하던 중이었다. 당시 사고를 옆에서 목격한 동료에 따르면 호스에 순간적으로 파란 불꽃이 일면서 청소기와 전기선, 그리고 김씨에게 불이 붙어 셋이 마치 한몸처럼 보였다고 한다. 당시 김씨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코드 뽑아”란 자신의 단발마의 외침.

동료는 승강장에 있는 코드를 뽑아버린 뒤 역무실로 달려가 사고를 얘기하곤 퇴근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노조 사무실에 가서 사표를 제출했다. 전에 근무하던 지하철 역사에서 감전사로 사망한 동료를 목도했기에 아무 미련이 없었다. 그러나 김씨는... 

회사 안전관리 소홀 ‘예고된 감전사’ 였다

김씨의 감전사고는 처음엔 외관상 심각하지 않았다. 사고 직전 의무실에서 안정을 취한 뒤 퇴근해 회사 눈치를 봐가며 틈틈이 쉬면서 동네 약국만 찾았을 뿐이었다. 때때로 영양주사를 맞거나 물 먹기도 힘들 정도로 목에 통증이 심해 이비인후과를 찾긴 했지만 정형외과를 가볼 생각은 미처 못 했다. 그러나 ‘다행’으로 생각했던 상황은 곧 ‘불행’으로 돌변했다.

감전 쇼크로 항문이 거의 다 타버려 대소변이나 기동에 불편을 겪었고, 무엇보다 당시 직접 사고를 당한 오른쪽 팔 전체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속에서 말 그대로 열기가 치솟는 것 같아 변변한 음식조차 삼킬 수 없어 죽이나 두유 등으로 버텨야 했다. 다급해 찾아간 동네 병원에선 MRI를 찍어야 정확한 결과가 나오겠다고 했지만 30만원이 넘는 비용을 도저히 댈 수 없었다. 그는 근처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하며 약간의 약 처방을 위안 삼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결국 민주노총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그해 11월 시립병원에서 MRI 촬영을 하는 등 정밀 진단을 받았다. 그의 정식 병명은 우측 회전근개 파열. 감전사 쇼크로 오른 팔을 몸통에 연결해 주는 5개의 근육이 다 잘려나간 상태라고 했다. 그나마 근육과 힘줄이 받치고 있어 외관상 절단만 면했던 것. 이후 김씨는 산재보험을 신청해 오른쪽 팔을 봉합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7주간 입원치료에 4주간 보장구를 착용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후유증에 동료 왕따까지 ‘재계약’이 아킬레스건

통원치료 중인 김씨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사고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했기에 그가 고통 받고 있는 여러 증상들을 감전사 후유증으로만 판단을 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장 심각한 것은 때를 놓친 치료로 “완치는 불가능하고 상태가 더 악화되지만 않으면 최선”이라는 의료진의 판단.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에 따라 산재보험 혜택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잘 처리되면 후유증상카드를 발급받아 응급상황을 넘기는 것이다.

그는 1개월 단위로 의사소견서를 공단에 제출해 치료를 산재보험 처리해 왔는데, 8월에 낸 소견서에 대한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한 달 넘게 자비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게다가 통증이 워낙 극심해 한방치료를 병행해 겨우 버텨가고 있는데 이 부분은 산재처리가 불가능하다. 50대 후반이기에 장애판정이라도 받아 쉬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외관상 완전한 장애인은 아니기에 웬만큼 높은 등급을 받지 않는 한 생계를 유지할 수도 없다. 여기에다가 한 달 10만원으로 살고 있는 쪽방 월세를 하반기부터는 23만원으로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독촉도 만만치 않다.

2002년 5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무작정 상경한 뒤 이 일 저 일을 하다 ‘공사’라는 데 끌려 용역업체를 통해서라도 지하철역에서 일하게 된 것이 마냥 즐거웠던 김씨. 2003~2005년 비정규직으로 일한 뒤 1년 여를 쉬다 2006년 다시 재취직한 지 1년여 만에 큰 사고를 당했다. 그 전에도 시청에서 정화조 검사를 나온다고 해서 정화조를 청소하다 메탄가스에 쓰러져 보름간 병원치료를 받고 기억력이 많이 쇠퇴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터였다.

 

사고 당시 김씨의 용역업체 A사가 김씨의 사직을 강요하며 그의 근무 행태를 일일이 통제하기 위해 준비한 서류들.   sumatriptan patch http://sumatriptannow.com/patch sumatriptan patchcialis coupon free discount prescription coupons cialis trial couponfree prescription cards cialis coupons and discounts coupon for cia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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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당시 용역업체 측은 안전교육조차 시키지 않았다. 이번 사고에도 역시 이 과정은 똑같이 반복됐다.

김씨는 현재 용역업체가 바뀌었지만, 사고 당시 용역업체 A사는 고압청소기의 감전사고 가능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김씨는 철로 세척작업을 할 때마다 청소기가 말썽을 부려 “애간장이 타곤 했다”고 한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공익근무 요원이 대학에서 전기 관련 전공을 해 ‘임시 땜방’을 해주긴 했지만 “이러다 아줌마 큰일 난다”는 말을 하곤 했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뒤에야 A사는 그에게 “별별 욕을 다 해가며” 38만원을 들여 청소기를 수리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종종 오작동이 일어나곤 한다.

김씨는 언제 또 감전사고를 일으킬지 모르는 청소기를 지금도 부여안고 작업을 한다. 같은 조 동료들이 ‘사고’ 청소기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같이 일하기 힘들다고 비방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죽더라도 내가 하겠다”는 오기는 휴화산 같은 고압 청소기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죽더라도 내가 하겠다” 여전히 ‘사고’ 청소기로 작업

이전 고용업체 A사는 “겉으로 팔이 잘린 게 아니면서 어떻게 감전사고라고 하느냐”는 억지 주장과 함께 3일 쉬면 무조건 해고라는 등 은근한 압박을 가해왔다. 또 근무 중 무단 이탈, 동료와의 불화, 내부 사실 유포 등은 해고 사유에 해당한다며 각서를 쓰게 하는 등 사고 직후 5월부터 산재보험으로 수술을 받는 11월까지 끊임없이 사직을 강요했다.

다행히 A사에서 현재의 용역업체로 바뀌어 부당 압력이 없어지긴 했지만 현재의 회사가 그의 사고 사실을 자세히 알까봐, 그래서 내년 3월 재계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는 아직도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안전관리를 소홀히 했던 이전 A사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도 걸 수 없다. 자칫 현재 회사에 미운 털이 박힐까봐.

김씨는 서울에 올라오기 전 남도지방에서 사회사업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전쟁 때 경찰을 집에 숨겨줬다는 이유로 부모가 바다에 수장되는 불운을 겪고 어렵게 자랐지만 5녀1남의 형제자매들과의 우애가 있었기에 어려움도 이길 수 있었다.

60년대부터 일찍이 운전면허를 취득해 트럭을 운전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했던 그는 삼십을 넘겨 전처를 사별하고 아이 셋을 키우는 남자와 결혼했다. 자신과 같은 고아 처지인 “불쌍한 아이들을 잘 키워주겠다는 일종의 봉사정신”으로.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 이혼당하고 홀로 사는 친구를 사업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보증을 서준 것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생각만큼 사업이 잘 안 되던 친구는 음독자살을 했고, 그나마 시신도 수개월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그렇게 죽은 친구가 안타깝지만 친구의 1억이 넘는 빚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이후 남편의 급작스러운 폭력이 시작됐고, 그는 병원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예전엔 주변 어려운 이들을 곧잘 도와주고, 기금을 모아 복지회관 건립에 주춧돌 역할까지 해 지역 신문에도 종종 기사화됐던 김씨였기에 더 자괴감에 시달렸다. 더구나 정작 자신이 어려울 땐 도와주는 이가 주변에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그를 일곱 번의 자살로 내몰기도 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날 때마다 의사가 그러더군요. 아줌마는 약에 내성이 강해 웬만한 약 먹어도 죽지 않으니 차라리 그 힘으로 열심히 살라고요. 나 때문에 주변이 온통 힘들고, 나 자신도 감당 못 할 사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걸 생각하면…그동안 조금이라도 남 도와주며 열심히, 부지런히 살려고 한 내 삶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현재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에서 60만원 이상을 빚 갚는 데 쓰고 근근이 살아가는 김씨는 이런 최소한의 ‘사람 구실’조차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자신을 보호할 법은 존재하나 그 법을 최대한 활용하면 결국 생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이 딜레마를 김씨는, 그리고 수많은 그와 같은 처지의 여성들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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