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고래

이 아련한 흑백 화면이 컬러로 바뀌면 절벽 위 2층 집 앞에서 빨래를 너는 할머니 새라(릴리안 기시)가 보인다. 마라노프 남작이 근처에서 낚시를 하겠다며 허락을 구한다. 새라가 차려놓은 아침상을 타박하던 동생 리비(베티 데이비스)는 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심통을 부린다. 또한 리비는 바다가 잘 보이도록 커다란 창을 내고 싶다는 새라에게 “새로운 걸 하기엔 우린 너무 늙었어”라고 일갈한다.

새라는 마라노프 남작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리비는 낯선 사람을 초대한다고 화를 내지만, 새라의 간청에 못이기는 척 꽃 장식이 달린 시폰 드레스를 입고 저녁 식탁에 앉는다. 새라 역시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입는다. 마라노프 남작에게 무례하게 굴고, 끝내 상처가 될 말을 하여 내쫓는 리비. 새라는 남편의 사진을 바라보며 더 이상 리비를 돌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이튿날 아침 리비는 “언니에게 부담되고 싶지 않아. 딸에게 돌봐줄 사람을 찾아달라고 할거야”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수리공이 오자 “언니와 나는 바다가 잘 보이도록 최대한 빨리 창을 만들기로 했어요”라며 일을 시킨다.

새라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남편을 잃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 사진을 보며 인사하고, 속상한 일이 있어도 남편 사진을 보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또한 새라는 고래 떼가 집 앞 바다를 지나가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것을 확인하던, 처녀 시절의 기다림도 지키고 있다. 어머니가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을 보살피는 것도 새라의 몫이다.

반면에 리비는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고, 외동딸은 리비를 돌보려 하지 않는다. 노년에 시력을 잃은 리비는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두 명의 전설적인 연기자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인다.

무성영화 시대부터 스타였던 릴리안 기시는 ‘8월의 고래’ 출연 당시 93세로, 영화 역사상 최고령 여주연 배우로 기록되었다. 밝고 건강한 아가씨에서 자애로운 할머니로 늙어간 기시는 ‘8월의 고래’를 유작으로 남기고 1993년 100세에 눈을 감았다.

베티 데이비스는 상대를 꿰뚫어보는 듯 강렬한 눈빛과 강인하다 못해 표독스런 여인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데이비스는 ‘8월의 고래’ 이후 영화 한 편을 더 찍고 1989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기시와 데이비스가 생전에 남긴 작품 수는 각각 119편이다.

메인의 클리프섬과 포틀랜드에서 촬영한 아름다운 바다 풍광과 잔잔한 음악까지. ‘8월의 고래’는 노년의 삶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8월의 영화다.     

감독 린제이 앤더슨/ 주연 릴리안 기시, 베티 데이비스/ 제작연도 1987년/ 러닝타임 91분/ 관람등급 전체/ 출시사 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