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 ‘Je m′en fous’(주 멍 푸)가 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가 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 대륙에서 그 방면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프랑스인의 사고방식이 이 표현 하나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다. 나와 상관이 없는 일에 이들처럼 철저히 무관심한 민족을 찾아보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혼자 사는 이혼녀가 자살한 지 6개월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어떻게 그 6개월 동안 자식들은 자기 엄마에게 안부전화 하나도 넣지 않고, 이웃의 얼굴이 6개월씩이나 보이지 않는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결국은 6개월씩이나 방세가 들어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한 아파트 주인에 의해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실 이곳의 ‘voisin’(브와젱, 이웃)과 한국의 이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선 ‘voisin’이란 단어에서는 한국의 ‘이웃’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인정’이라는 게 없다. 말 그대로 그저 옆집에 산다는 공간적 의미일 뿐, 복도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마주치면 ‘봉주르’ 하고 반갑게 인사하지만 그 이상의 관계는 없는 게 이곳의 ‘voisin’이다.

프랑스의 가족관계에서도 이 개인주의 성향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있어 ‘내 것’은  오직 ‘내 것’만이고 부모, 형제의 것은 절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부모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키우기 때문이다. 작은 선물을 해주거나 아니면 밥 한 끼를 먹여주면서도 부모는 애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습관적으로 시킨다. 이런 식으로 교육받은 아이들은 청소년이 된 후 당연히 자신의 용돈을 스스로 벌려고 노력한다. 프랑스인의 ‘Je m’en fous’ 사고방식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상생활에서도 쉽사리 발견된다. 90년대 초 샹베리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의 일이다.

화창한 봄날이라 한국 유학생들끼리 잔디밭에 앉아 멀리 알프스 산을 바라보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모두의 시선이 한 여학생에게로 고정되었다.

멜빵바지를 입은 금발의 여학생이 갓난아기들에게나 먹이는 우유병을 태연히 빨며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니 그 여학생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우리 한국 유학생들뿐이었다.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타인이 아무리 묘한 행동을 해도 특별히 저지하는 시선을 던지지 않는 이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인들의 ‘Je m’en fous’ 사고방식인 것이다. 역설적으로 프랑스인들의 이런 개인적인 성향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이들은 외국인이다. 외모와 피부 색이 다른 외국인이라 해서 특별한 적대감정을 갖지 않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이기 때문이다.

샹베리에서 난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는 아줌마 집에 방을 하나 얻어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일단 누군가에게 세를 준 방은 비록 내 집이라 해도 세든 자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겨울을 앞두고 주인아주머니가 내 방 난방공사를 점검하러 일꾼이 오는데 언제 시간이 나겠느냐고 물어왔을 때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개인의 자유를 너무 존중하여 남의 사생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아 때때로 인정미 없이 느껴지는 프랑스인과,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미덕이 되어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타인의 사생활에 끼어들어 개인의 자유영역을 함부로 침입하기도 한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가 서로 절충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텐데. 이것은 지나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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