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 교수의 섹슈얼리티 강좌
변혜정 교수의 섹슈얼리티 강좌
  •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8.08.22 11:05
  • 수정 2008-08-22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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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판단 근거 재논의 필요
객관적 판단 불가능한 ‘합리적인 여성’보다
‘평등권’과 ‘성적결정권’ 침해를 기준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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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자리에서 상급자가 여직원에게 술 따르기를 강요했을 때 여직원 중 일부만 성희롱이라고 느꼈다면 이는 성희롱인가. 같은 행위에 대해서 당사자들이 각각 다른 해석을 내렸을 때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또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J의원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에서 J의원은 “성희롱을 하지 않았다. 그냥 볼만 만졌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성희롱인가.

성희롱을 불법행위로 규정한 지 1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성희롱의 판단기준은 논란이 많다. 성희롱 여부의 판단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할 때다.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때 국가인권위원회가 내세우는 판단 근거는 ‘합리적 여성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합리적 여성’의 관점인가? 특히 그 입장들이 차이를 보일 때 누구의 입장을 따라야 하는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성희롱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성적 모욕감을 느꼈을 때 성희롱이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그 언동이 성적으로 모욕감을 준 것인지를 판단한다. 그러나 A가 성희롱이라고 느꼈지만 B와 C는 이것이 성희롱이 아니라고 했을 때 객관성의 부재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성희롱은 그 것을 경험하는 ‘감수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성희롱에 대한 감수성의 정도를 분석할 때 어느 단계에서 성희롱이라는 경계를 그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합리적 여성의 관점’이다.

성희롱이라는 것이 원래 젠더 의식에서 비롯된 이슈다. 그러나 ‘합리적 여성의 관점’에서 성희롱 문제를 풀다 보면 오히려 젠더의식보다 합리적 여성의 범위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가까워지게 된다.

즉 합리성을 판단하는 주체가 공동체의 주를 이루고 있는 남성 권력자이다 보니 남성이 생각하는 ‘합리적 여성’의 기준에 따라 성희롱 여부가 판단되고 성희롱은 젠더의식과 멀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되고 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관점, 합리적 여성이라는 당위적인 주장보다 성희롱을 왜 규제하였는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성희롱의 보호법익을 다룰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성희롱 판단의 법적 근거는 성적언동, 굴욕감과 불쾌감, 그리고 피해자의 관점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그 행위가 집단 내의 평등권를 침해하였는가, 그리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였는가의 여부다. 그러한 성적언동을 하게 된 행위자의 맥락과 그것을 접한 피해자의 맥락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행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아직도 성희롱 피해자의 95%는 여성이다. 그러나 ‘합리적 여성’이라는 기준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여성피해자, 남성피해자, 동성피해자 등의 사례들은 설명될 수 없다. 또 피해자의 관점에서 성희롱을 말한다고 해서 다 성희롱은 아니다. 성희롱이 성희롱으로 판단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또 다른 문제는 모든 성적 언동이 성희롱으로 주장되는 것도 문제다.

한국사회에서 성희롱을 문제화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근원은 권력관계다. 성희롱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데 공헌한 ‘서울대 우 조교 사건’을 예로 들면 이 문제는 결국 노동권의 침해, 행위자와 성적으로 평등한 우 조교의 성적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의 사안에서 평등권의 침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는가, 성희롱의 보호법익의 차원에서 논의해야 하며 한국적 맥락에서 그 접점을 어떻게 문제화할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또한 평등하지 않는 권력관계가 점철된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

성희롱 사건이 불거졌을 때 어떤 가해자도 “성희롱할 의도는 없었다”고 , 그것은 친절이고 배려이고 격려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행위든 그 의도는 분명히 있는 법 그 의도와 맥락을 깊이있게 고민하고 이를 평등권과 성적자기결정권의 측면에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희롱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 속에 존재하는 개념, 즉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살아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판단자가 그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이라는 틀에만 얽매인다면 판단의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성희롱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규범 속에서 어떤 것들은 지켜야 하고, 하지 말고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감수성과 일상 속에서의 의사소통 기술과 그 내용,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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