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베타맘’ 되기
한국에서 ‘베타맘’ 되기
  • 남영숙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승인 2008.08.14 11:31
  • 수정 2008-08-14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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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통제형 ‘알파맘’ 강요 한국문화 적응 어려워
일방적 학습강요보다 다양한 예술체험이 창의력 키워
미국, 스위스, 프랑스, 한국 등 4개국에서 일곱 개의 직장을 거치며 일하는 엄마로 살아온 필자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한국에서 자식 키우기’라고 답할 것 같다.

아이가 프랑스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피아노 레슨 이외에 따로 시켜본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었고, 직장 다니는 엄마들을 위해 원하면 오후 6시까지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지낼 수 있었다.

집에 오면 아이는 책을 읽거나 레고와 찰흙 등으로 뭔가 만드는 일에 열중하곤 했다. 한국과 같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나 온라인 게임 문화가 없는 환경에서 아이는 ‘심심해서’ 학교에 가고 싶어 했고, 학교에 가서 ‘노는’ 것을 재미있어 했다.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쪽지에는 방과 후 집에서 30분 이상 공부시키지 말라는 부탁이 적혀 있었다. 미리 공부를 시키면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요즘 ‘알파맘’과 ‘베타맘’ 논쟁이 있다고 한다. 자녀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통제형 엄마인 ‘알파맘’과 자녀가 알아서 크도록 한다는 자유방임형 ‘베타맘’에 관한 논쟁이라고 한다.

프랑스에 있을 때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직장에 다닐 뿐 아니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크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자유방임형 ‘베타맘’이 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부모들이 신경 쓰는 것은 주말과 방학 중에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하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뿐이었다.

5년 전 아이를 한국에 데리고 들어와서도 베타맘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와는 달리 마음이 늘 편치는 않다. 학원으로 돌리지 않고 키워보겠노라고 다짐하며 아이에게 학교수업을 열심히 듣고 교과서를 열심히 읽으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 수학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모르는 것을 물어보니까 그런 건 학원에서 배우지 않았느냐고 하며 그냥 넘어갔다고 했다.

음악도 미술도 체육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실기시험을 봐서 아이를 기죽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모든 과목을 다 밖에서 배울 수도 없고 하여 아이에게 그냥 알아서 해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냥 알아서 한 우리 아이의 성적은 완전 ‘자유방임형’이다. 대신 나름 취미생활을 많이 한다.  

이제 고1이 된 우리 아이를 다른 알파맘이 봤으면 이번 여름방학에 당장 수학 선행학습 집중반에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는 이번 여름에는 미술을 공부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전공을 할 것도 아닌 미술을 시작했다. 많이 보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학원과 공부방 대신 전시회와 공연장을 다녔고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21세기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을 위한 세기라고 말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일방적인 학습만이 아니라 여러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체험을 해 보는 것이 직관과 상상력을 키워주고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분야 또는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가게 될 것이고, 그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나중에 어른이 된 우리 아이의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엄마로서의 성공이 자식의 대학입학 성적 순이라고 간주되는 우리 현실 속에서 베타맘을 계속하기란 어지간한 베짱이 아니고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살아보니까 ‘국영수’ 잘한 친구들이 인생을 꼭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기에 아이를 그냥 믿고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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